이 변화는 북한의 주도적 태도변화와 한국의 일관된 노력, 미국의 결단과 수용이라는 삼박자 (trinity)가 만들어낸 공동작품이다. 북한의 변화는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최초로 감지되기 시작했고 이후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후 김여정과 정의용의 특사교환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후 김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초청으로 인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졌다. 작년의 한반도 정세와 비교해 본다면 가히 상전벽해라 아니할 수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 정세변화 중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특사단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후 합의한 6개 항이다. 6개 항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항, 남북은 4월말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 2항, 남북은 정상간 핫라인을 설치한다. 3항,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4항, 북측은 비핵화 문제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대화할 수 있다. 5항,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하지 않는다. 6항, 북측은 남측의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의 평향 방문을 초청한다.
이 중 1항, 2항, 6항은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에 대한 내용이고 3항, 4항, 5항은 북미대화와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 대북특사단 방북 전 남북관계는 상당한 진전이 있겠지만 북미관계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을 비웃듯이 특사단의 합의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모두에서 긍정적이고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은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며 이러한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음을 밝혔고 올림픽 이후 재개되기로 예정되어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도 이해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의지를 강력히 보여주는 신호이다. 또한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이 한번도 공식적으로 비핵화를 의제로 한 협상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이나 전략자산전개, 경제 제재 등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먼저 철회할 것을 계속 요구해 왔던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북한이 대화를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에 대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5월 말까지 김정은과 만날 것이라고 즉시 발표함으로써 빠른 시일 내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태도변화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북한이 미국의 최대압박정책과 경제 제재 강화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을 겪게 되고 전쟁위기감을 느끼는 등 궁지에 몰리면서 어쩔 수 없이 대화에 나오게 되었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작년에 핵무력 완성이라는 목표를 이루면서 이제는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화에 나서게 되었으며 이는 철저히 계산된 결과라는 해석이다. 진실은 이 두 주장 사이의 어느 쯤에 있으리라 보인다.
한편, 남북정상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지만 북미정상회담의 성사와 성공 여부는 아직 불확실해 보인다. 남북은 이미 핫라인 개설과 체육/문화 교류, 특사 교환 등 여러 차원에서 의미있는 교류가 진행되고 있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아직 어떠한 구체적 합의도 없고 미 행정부는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를 이룰 때까지 압박과 제제를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추가 조건에 대한 논의도 아직 분분하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안에서는 대화파로 분류되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해임되고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오가 새로 임명된 점도 변수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는 쉽게 말을 바꾼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 회담이라는 것도 북핵폐기만을 둘러싼 회담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미국과의 핵군축 대화를 의미하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 없으며 비핵화 조건으로 제시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CVID)와 까다로운 검증절차 등을 요구한다면 협상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한편,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 북한 이외에도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플레이어의 존재도 고려해야만 한다. 중국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환영하면서도 북미관계의 급속한 진전으로 북중관계의 악화나 중국의 소외 등을 바라지 않는다. 러시아도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시베리아 가스관이나 횡단철도의 한반도 통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겠지만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을 반기지는 않는다. 일본은 북미대화 이후 북일대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미국교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가 일본의 재무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는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 국가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대화와 타협으로 양보와 합의를 이루어 낸다면 한반도는 평화공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리버럴이나 진보좌파들마저 정파적 이해관계와 진영논리에 빠져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북미정상회담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며 이들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미정상회담을 지지해야만 한다.
남북정상회담합의와 북미정상회담 합의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진전이며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이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느냐 여부에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소중한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P.S. 이 글은 LA 내일을 여는 사람들 2018년 3월 정기모임 발표를 위해 준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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