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7일 화요일

전체성과 무한 서문 (문성원 번역) 발췌


전쟁상태는 도덕을 중지시킵니다.
(전쟁을 예측하고 모든 수단을 다해 이기는 기술인) 정치는 철학을 순진함에 대비시키듯이 스스로를 도덕과 대비시킵니다.

전쟁 속에서 현실은 자신을 가리는 온갖 말들과 이미지들을 찢어버리고 적나라하고 냉혹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두운 명료함 가운데 뚜렷이 드러나는 존재론적 사건은 그때까지 자신의 정체성에 닻을 내리고 있던 존재들을 운동하게 하는 것이며, 우리가 모면할 없는 객관적 질서에 의해 절대적인 것들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힘의 시련은 실재의 시련입니다. 그러나 폭력은 흘리게 하거나 죽이는 데서 생겨나는 것보다 , 인격적 존재들의 연속성을 중단시키는 데서, 그들이 이상 자신을 찾을 없는 역할을 하게 하는 데서, 그들로 하여금 약속뿐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실체를 배반하게 하는 데서, 모든 행위 가능성을 파괴해 버릴 행위들을 수행하게 하는 데서 생겨납니다전쟁은 외재성을 나타내지 않으며, 타자로서의 타자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전쟁은 동일자의 정체성을 파괴합니다.

전쟁에서 보이는 존재의 면모는 서양 철학을 지배하는 전체성 개념에 고정됩니다. 여기서 개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에게 명령하는 힘들의 담지자로 환원됩니다존재들은 이미 조형된 서사의 형식들에서 등장하게 그런 것입니다.

도덕적 의식은 평화의 확실함이 전쟁의 명백함을 제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웃음의 시선을 견딜 없습니다전쟁에서 나오는 제국의 평화는 전쟁에 근거를 둡니다. 같은 평화는 소외된 존재들에게 그들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존재와 맺는 원래의 본원적 관계가 필요합니다.

역사적 면에서 보면, 메시아적 평화의 종말론이 전쟁의 존재론에 스스로를 겹쳐 놓게 , 도덕은 정치와 대립할 것이며 신중함의 기능들이나 미의 기준들을 넘어설 것이고,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으로 자신을 주장할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이를 믿지 않습니다철학자들은 정치의 기초 위에 도덕을 세웁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예견, 증거도 없고 신앙에 종속된 계시의 산물인 종말론은, 철학자들이 매우 자연스럽게도 억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증거로 환원된 종말론은 전쟁에서 비롯하는 전체성의 존재론을 이미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종말론의 참된 가치는 다른 있습니다.

종말론은 목적론적 체계를 전체성에 도입하지 않습니다. 종말론은 역사의 방향을 가르쳐주는 데서 성립하지 않습니다. 종말론은 전체성의 저편에서 또는 역사의 저편에서 존재와 관계하는 것이지, 과거와 현재의 저편에서 존재와 관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론은 언제나 전체성의 밖에 있는 잉여와 맺는 관계입니다. 객관적 전체성이 존재의 참된 척도를 채우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서) 어떤 다른 개념무한의 개념 전체성에 대한 초월을, 전체성 속에 포함될 없으며 전체성과 마찬가지로 본래적인 초월을 표현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전체성의, 객관적 경험의 저쪽에서 순전히 부정적 방식으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저쪽에서 전체성과 역사의 내면에, 경험의 내면에 반영됩니다.

총체에서의 역사를 심판에 맡김으로써, 역사에 종말을 표시하는 전쟁들 자체에 외재적인 것이 되는 종말론적인 것은, 순간마다 순간 자체에 충만한 자신의 의미를 복원합니다중요한 것은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을 심판하는 시간의 순간마다 행해지는 심판입니다.

심판이라는 종말론의 발상은 존재들이 영원에 앞서서역사의 성취에 앞서서, 시간의 만료에 앞서서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점을 함축합니다. 존재들이 물론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만, 그러나 전체성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자기에 의거해서 그러하다는 점을 함축합니다.

역사를 넘쳐흐르는 존재의 이념은이미 성년인 존재자들을 가능하게 합니다. 같은 이유로 이념은 역사의 익명적 발언에 자신들의 입술을 빌려주는 대신에 발언할 있는 존재자들을 가능하게 합니다. 평화는 이렇게 발언할 있는 능력으로서 산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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