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문학 이론 및 대륙/유럽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론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인문학 주제에서 언어, 주체성, 과학 및 예술 개념을 재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문학에서 거의 모든 새로운 방향이 1780년대 임마누엘 칸트의 작업에서 시작하여 독일 낭만주의, 독일 관념론, 역사적 유물론, 현상학, 해석학 및 비판 이론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일 철학 전통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 칸트의 혁명
근대 독일 철학사에 대한 설명은 일반적으로 임마누엘 칸트(1724-1804)에서 시작한다. 칸트 철학에서 지배적인 요소는 정신의 구조에 대한 분석으로, 이는 지식과 윤리의 새로운 탈신학적 기반이 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20세기 철학의 ‘언어적 전환’이 칸트가 시도한 많은 것을 무효화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언어적 전환의 한 버전은 18세기와 19세기 초 독일 철학의 일부라는 점을 보여주지 못한다. 1760년대 이후 헤르더와 하만의 언어 연구에서는 언어가 사고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여겼고, 이러한 연구를 18세기 말 낭만주의자들이 받아들였으며, 훔볼트와 슐라이어마허가 발전시켰다. 사실 ‘언어적 전환’이 상정하고 있는 여러 가정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제시되었다.
칸트에게 다가가기
칸트가 자신의 글을 “초월적 철학” transcendental philosophy으로 부른다는 사실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일상 세계 너머에 있는 파악 불가능한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초월적’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는 저세상의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언가가 어떤 것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라면, 그 무언가는 초월적이다. 따라서 적어도 체외수정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섹스가 임신과 관련하여 초월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자신이 착수한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칸트의 전환에는 이상한 점이 있는데, 코페르니쿠스의 전환과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칸트의 전환도 마찬가지로 혁명적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인간이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한 과학적 이미지를 발전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런 우주에서 인간의 자리는 매우 사소하다. 반면 칸트는 우리의 생각을 우주 이해의 원리로 삼았다. 인간의 마음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둔 것이다.
제1비판서
칸트가 관찰된 경험적 자료와 선험적 지식이라는 명백히 양립 불가능한 두 차원을 어떻게 조화시키려 했는지 살펴보자. 제1비판서에서 핵심 요소는 현상을 분류하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필연적 – 선험적 – 사유 규칙을 규명하고, 더불어 이러한 규칙이 정신의 ‘자발적’ 본성에 기초한다는 생각을 확립하는 것이다. 칸트의 세 ‘비판서’는 다음과 같은 것에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어떻게 자연법칙에 도달하며, 그것이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기술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둘째, 우리는 인간의 자유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셋째, 우리가 자연을 아름다운 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예술을 통해 우리 스스로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자연적 필연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칸트는 지식에 두 가지 원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지각 경험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인 ‘직관’과, 우리가 우리의 정신을 통해 직관과 판단을 연결하는 규칙인 ‘범주’ 및 ‘개념’이다. 제1비판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직관의 형식’으로서의 공간과 시간 이론인 초월적 감성학이다. 두 번째 부분은 사고에 필수적인 형식에 관한 설명인 초월적 논리학이다. 셋째 부분은 경험 세계에만 적용되어야 하는 개념이 경험의 본래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적용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설명인 초월적 변증학이다. 이 한계란 다음과 같다. (1) 경험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야 한다. (2) 경험이 이해될 수 있으려면 특정한 선험적 관념이 필요하다.
초월적 주체
<초월적 감성학>에서 다루는 주체의 첫 번째 측면은 주체가 어떤 틀 안에서만 대상을 지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공간과 시간이라는 ‘직관의 형식’에 관한 설명은 칸트가 우리의 지식에 단계적 정교화가 필요함을 보이기 위한 일환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형식을 떠나서 대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사물 자체’에 관한 지식은 불가능하다. <초월적 논리학>은 칸트 자신이 “지성” understanding이라고 부르는 것, 즉 법칙에 매인 우리의 인식 능력에 관한 설명이다. 이 필수 요건을 칸트는 “통각의 종합적 통일” synthetic unity of apperception이라고 불렀다. ‘통각’은 라이프니츠가 사용한 용어로, 자신이 세계에서 무언가를 지각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반성적’ 자각을 뜻한다. 경험을 조직화하기 위한 선험적 규칙인 연결의 종류들을 “범주” categories 내지 “지성의 순수 형식”이라고 한다. 칸트는 이것들을 양, 질, 관계, 양태라는 네 가지 항 아래 열 두 가지로 나열한다.
판단
칸트는 ‘삼중 종합’의 측면에서 지식을 기술한다. 즉, 무언가가 먼저 정신에 영향을 미치면서 ‘파악’되고, 그런 다음 상상력으로 ‘재생’되고, 마지막으로 이를 분류하는 개념을 통해 ‘인식’된다. 이 모든 것은 다수성으로부터 동일성을 ‘종합해’ 내는 자기의식의 능력에 의존한다. 우리는 ‘판단 능력’으로 현상을 정리한다. 판단은 지성의 규칙 (범주들과 경험적 개념들)이 직관에 적용될 때 발생한다. 판단에 관한 칸트의 설명에는 중요한 단계가 하나 더 있는데, 이로 인해 훨씬 더 복잡해진다. 바로 순수 개념이 어떻게 해서 감각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칸트는 이 딜레마에서 ‘도식작용’ schematism 개념을 구상하게 된다. 칸트는 범주와 현상을 연결하는 제3의 용어가 있어야 하며 그것은 순수하면서도 경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범주와 관련하여 도식의 역할을 논한다. 세계 안의 대상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방식은 모두 선험적 범주가 우연적 직관에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달려 있다. 칸트는 우리가 지식의 대상을 두 가지 측면, 즉 대상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바인 ‘현상’phenomena의 측면과 우리의 생각과 독립적으로 대상이 존재하는 바인 ‘예지체’noumena의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직관의 종합을 통해 대상에 대한 개념을 형성할 수 있게 해 준다. 반면 후자는 사물 자체가 갖는 지식 형태, 곧 사물에 관하여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지식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성
지성은 경험 자료만 판단할 수 있으며, 바로 이러한 접근 대상의 한계가 지성의 특징이다. 경험적 판단을 넘어서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의 추가적인 능력을 칸트는 “이성”이라고 부른다. 지성이 경험 자료들 사이의 통일성을 창조하는 한편, 이성은 지성의 규칙들 사이의 통일성을 창조한다.
도덕과 토대
칸트는 <<도덕 형이상학 정초>> 서두에서 선의지만이 조건 없이 선하다고 간주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서 그의 관심사는 “도덕성의 최고 원리”를 확립하는 것이다. 도덕철학자들은 ‘결과론적’ 이론과 ‘의무론적’ 이론을 구분한다. 전자는 공리주의 이론 같은 것들인데 행위의 결과가 도덕적 가치를 결정한다고 간주한다. 반면 후자는 행위의 도덕적 가치가 행위 자체에 본유적이라고 간주하므로, 어떤 행위들은 다수에게 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더라도 명백히 잘못된 것일 뿐이다. 칸트는 후자의 진영에 속한다. 칸트의 도덕성의 기초에는 경험적 내용이 없다. 칸트에게는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따라야 하는 십계명 대신, 하나의 완전히 추상적인 명령이 있다. 이는 정언 명령으로 다음과 같다: “나는 나의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기를 의욕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정언 명령의 선험적 지위는 우리가 경험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나 그러한 앎으로부터 타인에 관하여 도출한 정보를 도덕성의 기초로 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시작된다. 그의 논증에서 중요한 요소는 불순종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외부적인 이유로 법에 순종하는 타율성이 아닌, 자율성, 자기 입법이다. 나는 타인을 내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인, 자기 결정 능력을 공유하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는 존엄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칸트에게,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자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가 된다. 한편, 여성이나 다른 인종에 대한 칸트의 태도는 그 자신의 우연적인, 역사적으로 결정된 오류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도덕 이론은 민주주의의 추동력이 되었다. 이 이론의 약점은 그러한 비전이 어떻게 구체적인 정치로 번역되어야 하는지에 있다.
자연과 자유: 제3비판서
칸트의 <<판단력 비판>>은 자연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지식의 측면이 아니라 쾌감의 측면에서 고찰한다. 제3비판서의 핵심 측면은 칸트가 반성적 판단이라고 부른 것이다. 반성적 판단에서 우리는 칸트식 의미로 지식의 지위를 갖지 않는, 사물들의 체계적 정합성에 대한 가정을 통해 개별에서 일반으로 이동한다. 반성적 판단이 인지 법칙을 확립하는 과제에서 해방되면 더 이상 지시받지 않고 자유롭게 부분을 전체에 결합할 수 있다. 이는 칸트가 처음에 다양한 현상에 대한 인지적 종합에 덧붙여 있다고 생각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동일한 쾌감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예술 작품의 부분들이 서로 연관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칸트는 자연의 체계적 구성에 대한 관념을 심미적 향유 능력과 연결한다. 실제로 자연의 온갖 측면은 개별 법칙들을 따르지만, 이러한 법칙의 맹목적 상호 작용의 결과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 유기체는 자연이 마치 ‘목적’의 측면에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자연의 유기적으로 구성된 산물은 모든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또한 수단으로 하는 산물이다. 유기체 안에는 헛되거나 무의미하거나 자연의 맹목적 매커니즘에 기인하는 것은 없다.” 자연이 인지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와 소통할 수도 있다는 발상의 의미는 칸트가 예술 창작과 감상에 관한 문제를 숙고할 때 분명해진다. 여기서는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하나는 미적 판단이 마구잡이로 주관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칸트는 이성적 존재들 간에 취미 문제에 대한 경험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된 감정의 능력인 ‘상식’ common sense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처음 두 비판에서 칸트는 우리가 지식에 있어서는 자연에, 윤리적 자기 결정에 있어서는 우리 자신에게 법칙을 부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심미적 ‘법칙’은 실제로 주체에 작용하는 자연의 결과로 나타난다. 처음 두 비판은 수용적 직관의 영역과 예지적인 자발성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한다. 제3비판서에서 칸트는 우리가 두 영역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세계를 볼 수 있다는 허구적 개념을 가지고 작업한다. 반성적 판단은 자연을 “개별 법칙들의 미로”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간주한다. 칸트는 근대 철학에 근본 문제를 남겼다. 우리가 세계로부터 수용한 자료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는 어디까지이며, 인간 정신의 행위에 의한 산물은 어디까지인가? 이는 18세기 말에 ‘실재론’과 ‘관념론’ 사이의 대립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칸트의 경우, 어떻게 결정론적 자연에서 주체의 자발성이 나오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2. 언어의 발견: 하만과 헤르더
언어의 기원들
1781년 칸트가 제1비판서를 출간하기 전부터 독일의 몇몇 사상가는 철학에서 언어의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근대 독일에서 언어 개념의 주요 혁신은 두 인물의 작품에서 이루어진다: 요한 게오르크 하만(1730-1788)과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1744-1803)
하만: 언어와 이성
하만은 비이성주의자가 아니었고 따라서 계몽주의의 적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과제가 매우 특수한 언어 개념을 통해 협소한 계몽주의 이성 개념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만의 인식론적 주장은 우리가 세계와 일차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관념이 아니라 ‘느낌’/ ‘감각’Empfindung의 측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계몽주의적 사고에 반대한 핵심 내용이다. 즉, 칸트와 같은 계몽주의적 사고는 우리가 어떻게 이성 능력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그냥 이성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한다. 하만에 따르면, 우리는 사물의 실재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 내지 확신이 있고, 이는 실재의 본성을 확립하려는 추상적인 철학적 시도에 앞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이성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며, 다른 사유와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비추론적’이라는 의미에서 ‘직접적’인 것이다. 하만의 계몽주의는 합리론의 계몽주의가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감각적 관계의 중요성을 존속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사물에 대한 인식 가능성과 언어에 대한 인식 가능성은 불가분한데, 왜냐하면 사물은 신의 말씀으로 창조되며 인간이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표현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과 끊임없이 교류한다고 보는 하만의 신학은 사물과의 직접적인 감각적 접촉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하만은 언어의 기원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 철학에서 근본적 어려움임을 보여 주었다. 언어에 대한 설명은 이성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이성 자체가 언어를 필요로 한다. 하만은 언어가 감각적으로 나타나면서도 논리적 구조에 의존하기 때문에 칸트가 지식의 원천을 수용성과 자발성으로 나눈 것을 ‘해체’한다. 두 원천은 분리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둘이 기능상 서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의존하는 것과 정신에 의존하는 것 사이의 철학적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하만의 시도는 독일 관념론과 초기 낭만주의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하만의 칸트 비판은 초월적 논증을 수립하려는 시도와 그러한 수립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사이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자연 과학에 기반한 접근 방식의 불충분함은 우리가 어릴 때 습득한 최초의 자연 언어(들)로 세계를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경우에만 과학적 탐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언어는 제거할 수 없는 배경을 형성하는데, 이 배경 없이는 과학적 판단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언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선이해를 항상 사용해야 한다. 하만은 하이데거와 가다머처럼 이 문제를 자기 사유의 핵심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헤르더
헤르더의 작업 뒤에 놓인 근본 동기는 편협한 계몽주의 세계관이 가져오는 위축 효과와 관련된 의구심이었다. 헤르더는 <<최근 독일 문학에 관한 단편들>>에서 “우리가 생각 없이는 사고할 수 없고 말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게 사실이라면, 언어는 인간의 지식 전체에 한계와 윤곽을 부여한다”라는 말로, 신기원을 이룬 그의 첫 가설을 명확히 한다. 헤르더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말한다는 것과 거의 다름 없다”. 즉, 언어는 “인간 사고의 도구이자 내용이며 형식”이다. 헤르더는 특정한 문화 형태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를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근대성은 그러한 형태에서 의미를 흡수하고 형태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악명 높다. 헤르더와 하만 둘 다 우리가 ‘일반적인 철학 언어’를 추구할 수 있다고, 혹은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계몽주의의 경향에 반대한다. 헤르더의 핵심 통찰 중 하나는 언어가 그 사용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이 어떻게 어원적으로 파생되고 분석적으로 결정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문제다. 기원과 사용이 매우 다른 경우가 많다.”
언어의 기원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언어가 그저 소음이나 동물의 신호가 아닌 언어로 존재하려면, 소리를 의미로 만들기 위한 정합적 사유라는 의미에서 이성이 필요할 것 같다. 반면, 우리가 생각을 언어로만 할 수 있다면, 이성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 가능성의 조건으로 언어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언어를 언어로 만드는 게 무엇인가가 분명하지 않다. 헤르더는 섭리decree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헤르더는 우리의 본성 자체가 본유적으로 언어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언어를 ‘발명’한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거부하고 그 대신 언어를 우리 안에 본유적인 것으로 본다. 테일러는 헤르더의 언어 개념을 “표현적”이라 칭한다. 언어는 이미 거기 있는 사물을 그 자체로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측면을 드러나게 한다. 헤르더는 어떤 표현이 의미하는 바를 ‘분석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발상에 반대하는데, 이는 그가 언어의 사용을 세계 내 존재의 한 부분으로 본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존재 방식은 주어진 언어의 의미를 분석한 결과보다 앞서는 것이다.
3. 독일 관념론: 피히테에서 초기 셸링까지
자기 결정의 한계들
독일 관념론의 주요 주창자들은 자신들의 원천을 칸트로 보는데, 칸트는 버클리의 관념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념론에 대한 칸트의 논박이 설득력 있지는 않다. 독일 관념론의 기본 쟁점은 주체의 생각이 주체 자신이 활동한 결과인지 아니면 세계가 주체에게 미친 영향의 결과인지에 관련된다. 따라서 독일 관념론이 직면한 문제는 주체의 입법적 역할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다.
토대론과 주체
피히테는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의 공통 원천이 주체의 자발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피히테의 텍스트는 무척 난해하지만 그의 핵심 사상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그의 핵심 사상은 칸트의 주장을 발생적 측면에서 탐구한 결과다. 자연이 법칙에 기반한 기계적인 객관성의 영역에 불과하다면, 그러한 법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연적 본능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피히테는 순전히 객관적인 측면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절대적 나’ absolute I가 세계의 궁극적 토대라고 주장한다. 이 개념이 실제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이 용어의 목적은 존재의 우선적 측면이 객관적이고 법칙 지배적인 기능이라는 생각에 반박하는 것이다: 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세계가 조금이라도 객관적인(대상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위해 세계에 앞선 무언가가 필요하다. 피히테가 직면한 문제는 토대론의 한 형태다. 즉, 철학이 세계에 관한 참된 그림을 구성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절대적 확실성의 지점을 찾는 것. 피히테는 의식의 본질은 사실처럼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임으로써 그리고 그 자체 외에 다른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음으로써 객관화에 저항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식은 결정론적인 자연 세계에 적용되는 종류의 설명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철학의 토대가 되는 ‘나’가 ‘자기-정립’이라는 피히테의 주장은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독일 관념론은 칸트가 정신과 자연 ‘자체’로 나눈 것을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이 시도가 타당한 것은 두 측면을 완전히 분리하면 두 측면이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보여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념론의 주장
야코비가 전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사물 자체에서 문제로 남는 부분을 피하고자 실재론의 이름으로 칸트에 대한 반대를 정립했다면, 또 다른 반대는 그 반대 입장, 즉 사물 자체를 완전히 없애고자 하는 철저한 관념론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 이렇게 한 점에 수렴하는 것은 독일 관념론에서 중요하다. 각각의 지지자들은 실재론과 관념론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노력과는 반대로 결국 한쪽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외부 사물로 보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해결책을 주체의 본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마이몬의 핵심 주장을 피히테가 발전시켰다. 그 결과 외부 세계로 나타나는 것은 ‘나’의 활동이 무의식적으로 생산한 산물로 여겨진다. 칸트의 생각에 대한 대안들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 사이의 모든 근본적 분단을 허물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단을 토대론이라는 이름으로 피하고자 한다면, 그 결과는 우리가 검토하기 시작한 관념론류과 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가능성은 양쪽의 경계선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낭만주의의 반토대론적 입장일 것이다. 이 입장은 주체를 절대적 주체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쪽을 택하는 대신, 문제를 주관적 측면이나 객관적 측면으로 특징짓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
피히테의 관념론
피히테, 셸링, 헤겔이 직면한 문제는 어떻게 사물 자체의 저항을 극복하고 칸트 모델을 넘어설 수 있는지다. 피히테의 대답은 주관적 원리에 절대적인 토대의 우선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피히테가 모든 것이 주체에게 종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물의 저항과 자연법칙의 객관성을 인지하지만, 또한 주관성의 원리가 없다면 이러한 저항은 전혀 저항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사물을 알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발상은 주체가 자기 자신에 대해 분열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절대적 ‘나’는 ‘나’(의식)와 비아(객관적 세계)로 나뉘는데, 이것들은 서로 상대적이다. 그 결과 ‘나’는 ‘자신에 관하여 하는 행동’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우리의 사유와 행동을 반성하는 능력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 ‘나’가 ‘무한’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자기-제한은 제한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요구를 만들어 낸다. 피히테는 우리의 주관성의 핵심은 인과적으로 결정된 유한한 사물의 세계를 초월할 수 있는 도덕적 존재로서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그의 목표는 유물론에 내재한 문제에 빠지지 않으면서 객관적 세계가 주체에게 저항한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주체의 ‘무한한 활동’에 대한 ‘저지’가 대상에 대한 점점 더 분명한 의식을 가져오는데 이는 가장 낮은 형태의 의식인 무언가에 대한 맨 ‘느낌’에서 시작하여 더 구체적인 ‘감각’으로, 더 판명한 종류의 지각인 ‘직관’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개념’으로 발전한다. 이 모든 것은 그 자체로는 궁극적으로 나뉘지 않는 절대적 ‘나’ 안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나’를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는 철학하는 주체인 ‘나’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이 주체는 한계가 있는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 즉 스스로 결정하고 철학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았다. 그렇다면 나의 주관성과 다른 주체들의 주관성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피히테의 관점에서 상호주관성이 어떻게 가능한가? 피히테에 따르면, 각 주체는 자기 자유에 대한 인식의 조건으로서 다른 주체에 의존한다. 여기에 관련되는 구조, 즉 반성 구조는 독일 관념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구조 안에서 다른 무언가에 의해 자신에게 자신이 비추어지는 반성을 통해서만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피히테의 구상은 자기와 타자가 서로 동등함을 어떻게 상호 간에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 답변으로 매력이 있다. 그러나 셸링이 1800년에 <<초월적 관념론 체계>>에서 이미 보여 주었듯이, 이 구조의 문제점은 그것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요구에 앞서 이미 내가 내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주체의 요구와 관련하여 내 자유를 행사하라는 다른 주체의 요구를 이해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후 철학자들이 피히테의 상호주관성 개념을 사용하는 한 가지 방식은 언어를 내가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공유된 구조 내지 ‘거울’로 간주하는 것이다.
자연과 정신: 셸링
두 측면이 서로 다른 질서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는 항상 어려운 문제다. 자연이 순전히 객관적이고 결정론적일 뿐이라면, 자연과 주관성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이 문제에 대한 피히테의 해결책은 개인의 의식과 자연, 곧 상대적 ‘나’와 비아를 모두 ‘나’ 안에 포함하는 절대적 ‘나’ 개념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세계가 객관적이면서도 어떤 식으로는 주관적이라는 발상은 다른 방식들로도 탐구될 수 있는데, 셸링(1775-1854)의 철학이 그러한 탐구를 바탕으로 한다. 만일 자연을 단지 작용받을 수 있는 자연으로만 간주한다면, 이러한 자연은 주체의 힘에 완전히 종속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성이 필연적으로 ‘이성적인’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근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셸링의 초기 작업은 여기서 제기된 문제들과 관련하여 양면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으로 그는 주체가 객관적 설명으로 환원불가능하다는 피히테의 주장에 매력을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을 순전히 객관적인(대상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셸링은 자기 철학의 한 형태에서, 칸트가 현상과 사물 자체로 분리한 데서 수반된 이원론을 극복하면서도 절대적 ‘나’라는 가정으로 어어지지는 않게 자연을 설명하고자 한다. 셸링은 자연 자체가 ‘생산성’이라고 생각했다. “대상은 결코 절대적/무조건적이지 않으므로 자연에는 그 자체로 비대상적인(비객관적인) 것이 상정되어 있어야 하며, 이 절대적으로 비대상적인 것으로 상정되는 것이 바로 자연의 본래적 생산성이다.” 생산성으로서의 자연은, 모든 가능한 ‘술어들’의 주체이므로 대상으로 생각될 수 없다. 각 대상은 그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동일성(정체성)이 있지만, 생산성은 끊임없이 그 동일성을 극복하게 이끈다. 동시에, 이러한 주체와 대상의 차이는 서로를 연결하는 동일성에 기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원론의 모든 문제가 다시 나타나게 된다. 자연은 절대적 생산 주체이며, 그 술어들은 자연 세계에서 종합된 대상들이다. 셸링은 ‘동일성 철학’으로 불리는 철학에서 피히테보다는 스피노자의 방향으로 더 쏠린다. 이제 그는 피히테 철학과 달리 ‘나’를 나타난 세계의 출발 원리로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왜 절대적인 것은, 일시적인 대상의 세계에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그 세계의 일시성을 넘어서는 것을 파악하고자 하는 주관성을 낳는가? 셸링은 이후 작업의 대부분을 우리가 나타난 세계의 존재 이유를 전혀 제시할 수 없을 가능성의 결과를 탐구하는 동시에 그러한 세계가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데 할애한다.
4. 독일 관념론: 헤겔
보편적 매개
헤겔은 사물들 안에서 우리의 자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완전한 포괄적인 설명을 구상한다. 이는 철학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관적 관점과 객관적 관점을 통합하는 설명이다. 피히테와 셸링 모두에게 영향을 받은 헤겔은 <<정신 현상학>>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발전시킨다. 칸트는 사고 형식이 그 형식의 대상과 분리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런 식으로 둘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가정은 우리가 현상을 인식하는 형식과 항상 분리되어 있는 ‘사물 자체’의 문제를 야기한다. 헤겔은 사고의 형식들이 가장 원시적인 형식에서부터 과학 연구 및 철학에서 사용하는 발전된 개념에 이르기까지, 주체와 세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역사적으로 발생하며, 따라서 사고와 사고의 내용을 분리해서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정신 현상학>>
헤겔에 따르면 직접적인 개별 사실이라 여겨지는 것은 철저히 보편자를 통해 매개된다. 내 앞에 있는 것의 특수성을 바라보는 행위의 구체성을 구체적이라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특수성을 가리키기 위해 ‘이것’, ‘여기’, ‘지금’과 같은 보편적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서 중요한 발상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이는 사물들이 필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특정한 의미에서는 ‘동일하다’는 설명이다. <<현상학>>은 사고와 실재의 일치라는 직접적인 관념에 내포된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처음에 직접적이었던 것을 매개함으로써만 이 일치의 진리가 보일 수 있다. 이 진리는 처음에 잠재적으로만 존재했던 것의 실현으로서 체계의 끝에 이르러야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절대적인 것은 “본질상 결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흔히 정립, 반정립, 종합이라는 삼일체의 측면에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이는 그가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변증법의 핵심은 헤겔이 “부정의 부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발상은 규정은 부정이라는 스피노자의 발상, 즉 어떤 단일한 사물도 그것이 그것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이 아닌지에 항상 의존하기 때문에 ‘긍정적’일 수 없다는 점을 더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헤겔은 이 과정을 “아우프헤붕” Aughebung (보통 ‘지양’sublation으로 번역됨)이라 불렀다. ‘아우프헤붕’에는 ‘부정하다’, ‘보존하다’, ‘고양하다’라는 딱 보기에 모순되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부정의 부정이 극복된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개별 진리들의 부정 자체가 가장 일반적인 철학적 진리, 즉 모든 개별 진리는 유한하다는 점을 나타남을 입증함으로써 말이다. 이것은 바로 그가 “참은 전체적인 것이다”라는 유명한 주장을 한 이유다. 부분적인 것은 모두 ‘비진리’인데 그 특수성이 그것을 넘어 체계적 완성을 향해 나아갈 때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식은 주체가 타자와 자신의 차이를 통해 자기를 인식하게 되고 동시에 타자가 자기의 통제하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때 발생한다. 자기의식이 정말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타자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결핍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결핍을 충족시키면 자신이 타자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자기의식에 관한 헤겔의 설명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주인’과 ‘노예’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다.
존재의 문제들
헤겔에 대한 역사적인 해석과 그의 철학이 초월적 철학의 한 형태라고 보는 해석 사이의 긴장은 그의 철학을 평가함에 있어 핵심 문제를 나타낸다: 1. 철학은 다른 어떤 과학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진리를 제공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학문인가? 그렇다면 헤겔이 제공하는 것은 칸트식 지식 구조의 한 형태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은 여전히 무시간적인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형이상학 전통에 속할 것이다. 2. 아니면 헤겔은 <<현상학>>에서처럼 어떻게 이성이 특정 시점의 형태가 되었는지에 관한 철학적 고찰로만 이성의 권위가 검증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인가? 이는 초시간적 권위의 존재에 호소하는 것을 배제할 것이며, 현대의 ‘반형이상학적’ 헤겔 옹호자들이 선호하는 해석이다. 헤겔의 <<논리학>>은 논증에 필요한 형식을 분석하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파생된 의미의 논리학이 아니다. 실재가 사유되는 방식의 본성에 관한 주장, 즉 존재론에 관한 장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학>>은 ‘존재’가 ‘무’와의 관계로 규정되는 것과 같이 각 개념이 다른 개념과의 관계로 규정되는 ‘개념들의 논리’로 설명되어 왔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존재가 이런 종류의 개념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논리학>>은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철저히 개관하려는 시도로 되어 있고, 그래서 하버마스가 말했듯이 “모든 맥락의 맥락”에 관한 설명을 제공하고자 시도한다. 이것이 헤겔이 “절대 관념”이라는 말로 의미한 바다. 문제는 이 관념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다. 독일 관념론 사상가들의 목표는 칸트로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이는 사고와 세계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고가 사고 자체의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면 실재도 파악할 수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이 분열을 극복하고자 했다. 헤겔은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자 하는 가장 인상적인 시도를 했다. 하지만 헤겔이 주요 저술을 집필하기 전부터도 초기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독일 관념론의 기획에 의문을 제기했다. 다음 장에서는 관념론에 대한 낭만주의의 비판과 쇼펜하우어와 포이어바흐의 비판을 모두 살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