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3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을 이기고 제4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그 후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결과에 대한 이의제기와 소송,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건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올해 1월 20일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 출범했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와는 여러 면에서 매우 차별화된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트럼프 행정부와 뚜렷히 구별되는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외교정책에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우선주의 (America First)라는 슬로건 아래 고립주의,
보호무역주의, 일방주의, 힘에 기반한 외교,
위로부터의 접근 방식 등의 정책을 선호했던 반면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복귀 (America Is Back)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제주의,
자유무역주의, 다자주의, 전통외교, 아래로부터의 접근 방식 등의 정책을 선호할 것으로 보여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포린어페어즈 (Foreign Affairs) 기고문을 통해 미국이 다시 자유세계를 이끌 것이며 “차기 대통령은 미국의 실추된 신뢰도와 리더십을 복구”하고 “동맹관계를 복원하고 미국의 경제를 보호하고 리더십을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서도 동맹을 복원하고 세계와 협력할 것을 다시 한 번 약속했다.
그리고 대통령직에 취임하자마자 파리기후협약에 즉시 복귀하고 더 나아가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인권이사회에도 복귀하며 주요 외교정책 공약을 바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압박과 관여”
(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정책이나 그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Strategic Patience)정책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전략”
(New Strategy)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로운 전략의 수립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 행정부들의 성과는 계승하고 한계는 극복하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평화지향적인 한반도 정책을 수립하기를 기대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에 이미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북한과의 협상에서 “협상실무진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북한의 비핵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위해 우리의 동맹국이나 중국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관련국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동맹국이나 관련국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매우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인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 특히 한미동맹의 파트너이자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대한민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통화에서 두 정상이 “가급적 조속히 포괄적인 대북 전략을 함께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합의한 사실은 이런 면에서 볼 때 매우 고무적이다.
대한민국의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남북미 판문점 회담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미국과 한국이 공동보조를 취했을 때 그 목표가 가장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평화지향적 한미동맹,
한미연합군사훈련,
전시작전권 반환,
개성공단 재개,
남북경제협력,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 등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긴밀히 협력할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한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외교적 목표인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북핵문제는 첫째,
북한과의 직접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
둘째 행동과 행동 원칙에 따른 단계적,
호혜적 해결이라는 굳건한 두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전임 행정부들이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제재와 압박 위주의 “선핵포기 후보상”
정책이나 CVID 정책을 다시 한 번 북한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와 압박이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북한의 안보불안심리를 자극해서 문제를 악화시켜 왔으며,
북한에 대한 리비아식 “선핵포기 후보상”
정책이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폐기라는 CVID, 트럼프 행정부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라는 FFVD 요구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정책 목표임을 깨닫고,
이제는 실현가능한 구체적 방안들을 검토하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북한에게 핵무기 외에도 생화학 무기나 사이버해킹 등 다른 모든 문제해결을 동시에 요구한다거나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등을 제기한다면 이는 북핵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이 문제들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서도 가장 시급한 과제인 한반도 비핵화 문제부터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에서 한반도 문제를 담당할 여러 부서의 책임자들이 지명되거나 임명되었는데,
국무장관에는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
국무부 부장관에는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에는 성 김 전 주한대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에는 정 박 전
CIA 동아태 미션센터 국장,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에는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국방장관에는 로이드 오스틴 전 중부사령관,
국가정보국장에는 에브릴 헤인스 전
CIA 부국장 등이 임명되었고 대북문제를 전담하고 북한과의 협상에서 대표로 나설 대북정책특별대표만 아직 임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 중 몇몇은 이미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불가능한 목표라거나 북한 정부는 신뢰할만 한 협상파트너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클린턴 행정부 이후 미국과 북한과의 핵협상 역사를 자세히 살펴 보면 북한이 여러 차례에 걸쳐 진정성을 가지고 미국과의 협상에 임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협상실무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협상 성공을 위해 아래로부터의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교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이 때로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반해서 한반도 문제를 직접 풀어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성공을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접근 방식과 아래로부터의 접근 방식을 필요에 따라 번갈아가며 적절히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여진다.
트럼프 행정부의 탑다운 방식 (Top-down Approach)이 많은 한계를 지니기도 했지만 반면에 그로 인한 성과를 보여준 측면도 있듯이,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문제와 한반도 문제 해결과정에서 바텀업 방식 (Bottom-up Approach)만을 고집한다면 이는 성과와 더불어 북핵문제 해결의 이니셔티브나 타이밍 등에서 큰 한계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 경제제재 완화/해제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 가교 역할 속에서 가능했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 6월 싱가포르 제1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중요한 합의에 이어 양국 공동성명까지 발표하는 등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가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2019년 2월의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협상결렬로 끝나면서부터 관계가 다시 악화되어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후 북한은 미국에게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며,
2019년 12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는 “정면돌파전”을 선언했고,
올해 1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에서도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면서 앞으로는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언뜻 도발적으로 들릴 수 있는 북한의 이러한 주장들이 사실 새로운 주장은 아니며 맥락을 잘 파악하고 행간을 잘 읽어보면 북한이 여전히 미국과의 대화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을 선제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냉전 종식 이후 북한체제의 안보불안을 경감시키기 위한 억지력 차원에서 개발되었다.
당시 냉전 종식으로 인해 북한의 우방국이었던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을 때 미국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가 되었으며 한국과 북한과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그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유로 시작된 북핵문제의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을 위해서 북한은 먼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폐지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적대정책 폐지는 북한이 자세히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주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 제거와 전략무기 전개를 포함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지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체제안전 보장은 미국의 북한정권에 대한 붕괴시도 (Regime Change)의 완전한 포기를 의미한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시급한 과제이다.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
북한이 비록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시험은 중단했지만 북한의 핵능력은 여전히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지속적인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 정부들처럼 북한정권의 붕괴라는 희망적 사고에만 매달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2018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원칙과 정신으로 회귀해서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성명에서 양국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의 평화체제,
그리고 한반도의 비핵화에 합의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세 가지 과제가 긴밀히 결합되어 있으며 또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동전의 양면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출발점으로서 한반도종전선언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반도에서 공식적으로 전쟁을 끝내는 종전선언은 법적 규제력이 없는 상징적인 선언도 가능하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큰 정치적 부담 없이 실행할 수 있으며 이는 이미 공화당 정부였던 부시 행정부나 트럼프 행정부 때에도 적극적으로 검토되었던 사안이기도 하다.
종전선언 이후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병행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최종적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혹은 한반도 평화조약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되도록 빨리 착수해서 한반도 비핵화의 구체적 범위를 설정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단계적 액션플랜에 합의해야 한다.
더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에서 평화분위기를 조성하고 상호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 속에서 한미연례연합군사훈련의 중단,
대한민국 정부로 전시작전권의 조속한 반환,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한 종전선언,
북한 지도자와의 정상회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
남북경제협력과 보건의료협력 지원 등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들은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과 새 행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특수한 상황에 대해 좀 더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고 한반도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남북 대치 상황 등 특수한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최근 한국에서 입법통과된 대북전단금지법 등이 한반도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고 그로 인해 잘못된 입장을 가지거나 잘못된 정책을 추진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4개국이 참가하는 지역 안보협의체 쿼드 (Quad)와 여기에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를 포함시키는 쿼드 플러스 (Quad Plus)를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이 최근 있었다.
그러나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구축이 시급한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한국정부가 당장 쿼드나 쿼드 플러스에 참가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현실적으로도 쉽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러한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이해에 기반해서 이 문제도 한국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 판데믹 상황과 여러 산적한 국내외 문제의 시급한 해결을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무척 바쁠 것이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의 우선정책 과제는 코로나바이러스 판데믹 상황 극복,
기후위기 대응,
인종적 불평등 해소,
경제회복, 의료개혁, 이민개혁, 미국의 리더십 복구 등인데 모두 다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여러 차례 약속했듯이 실추된 미국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민주적이고 모범적인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