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6일 화요일

시간과 타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강영안 옮김) 제2강 요약

물질은 홀로서기의 불행이다. 고독과 물질성은 서로 어울린다고독은 말하자면 물질로 가득 일상적 삶의 동반자다일상적 삶은 타락과는 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형이상학적 운명에 대한 배신과도 거리가 멀다. 일상적 삶은 구원에 몰두하는 것이다.

일상적 삶과 구원

좀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과 고독의 절망. 둘은 너무나 자명한 경험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도무지 화해할 없는 적대 관계에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고독의 경험과 사회적 경험은 서로 반대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율 배반의 관계에 있다. 각각 나름대로 보편적 경험임을 내세우고 그와 다른 경험은 진정한 경험의 타락으로 보는 생각에 마침내 이르게 된다.

사회학과 사회주의의 낙관적 구성주의의 핵심에는 고독의 감정이 하나의 위협적 요소로 남아 있다. 그것은 타인과의 대화와 집단적 작업에서 얻는 기쁨, 세계를 거주 가느안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파스칼적인 기분전환이나 고독을 단순히 망각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고발하게 준다.

하지만 반대도 똑같이 참이다. 파스칼적인, 키에르케고르적인, 니체적인, 하이데거적인 불안 가운데에서 우리는 추악한 부르조아처럼 처신한다. 아니면 우리는 미쳐 있다. 아무도 광기를 구원의 길로 제안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적대적인 경험은 각각 하나의 도덕이다. 이들은 상대방을 (인식론적으로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오류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거짓이라고 비난한다.

구원의 욕구와 만족의 욕구야곱과 에서 사이의 이율배반. 하지만 구원과 만족의 진정한 관계는 고전적 관념론이 알아 차렸고 현대의 실존주의가 끝까지 유지하고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경제적 투쟁은 이미 자체로 구원을 위한 투쟁이다. 왜냐하면 투쟁은 홀로서기 변증법에 뿌리를 두고 있고 변증법에 의해서 최초의 자유가 정립되기 때문이다.

물질적 삶이야말로 존재의 익명성에 대한 승리요, 동시에 그의 자유 자체에 의해, 스스로 매여 있는 비극적인 고정성임을 우리는 인정하고자 한다.

고독을 주체의 물질성에 관련지을 어떤 의미에서 주체의 근본적인 발걸음을 구성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있다.

세계를 통한 구원: 먹거리들

하이데거 이후, 우리는 세계를 도구들의 집합으로 보는 일에 익숙해 있다하지만세계는 도구들의 체계를 이루기 전에 먹거리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이다세계 안에서의 우리의 실존을 특징짓는 것은 먹거리들이다. 탈존적 실존, 자기 밖에 존재하는 것은 하지만 대상에 의해 제한된다.

대상과의 관계, 이것을 우리는 향유로 특징지을 있다. 모든 향유는 존재의 방식일 뿐 아니라 동시에 감각 작용, 다시 말해 빛과 인식이다. 대상을 흡수하지만 동시에 대상과 거리를 둔다홀로서기의 순수하고 단순한 동일성 안에서 주체는 자기 자신에게 매여 있지만, 세계 안에서는 자기에게 돌아오는 대신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과의 관계>라는 것이 있다. 주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된다. 빛은 그런 가능성의 조건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일상적 삶은 이미 최초의 물질성으로부터 해방되는 방식인데 이것에 의해 주체는 완성된다. 여기에는 이미 자기 망각이 개입되어 있다.

빛과 이성의 초월

하지만 자기 망각, 향유의 밝음에 의해서도 자기와 자아의 없는 관계는 깨뜨려지지 않는다.

빛과 인식은 홀로서기와 그와 관련된 변증법 안에서 제대로 가치가 평가될 있다이성과 빛은 그것들 자체로, 존재자인 한에서 존재자의 고독을 완성하며, 완전히 유일하고 독특한 지표가 되어야 목표를 수행한다.

이성은 모든 것을 자신의 보편성 안에서 포괄하면서 자체로 고독 안에 머물러 있다. 유아론은 착오도 아니고 궤변도 아니다. 이성 자체가 유아론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이성이 결합하는 감각이 <주관적> 특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의 보편성 때문에 그렇다의식의 지향성은 자아를 사물들과 구별하게 주지만 유아론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빛의 객관성, 그것은 주관성 자체이다. 모든 대상은 의식의 언어로 말해질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은 속에 포착될 있다.

삶은, 물질과의 투쟁 속에서 그의 일상적 초월이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사건을 만날 , 그때만이 구원의 길이 있을 것이다. 초월, 빛의 초월을 떠받치고 외부 세계에 현실적 외재성을 부여하는 초월을 파악하려면 구체적 상황, 향유 속에서 빛이 주어지는 상황, 물질적 실존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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