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1883년 마르크스 사망 당시에,
그가 전 생애의 절반 이상의 시기 동안 살았던 영국에서 그의 정치적,
지적 영향력은 미미했음.
그러나 그의 사후 25년 사이에,
그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동계급 정치정당이 획득한 득표율이 15%에서 47%에 이를 정도로 영향력이 성장 (영국만이 예외).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파시즘의 종말에 이르는 시기에는 이들 정당이 유력 야당 뿐 아니라 집권당이 되기도 했음.
그 뿐 아니라 비민주주의 국가나 제3세계 국가들에서도 많은 마르크스주의 혁명조직이 만들어졌음.
마르크스 사후 70년 후에는 전세계 인구의 1/3 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았고,
이 책이 출판된 2011년 현재에도 전세계 인구의 20%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음.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와 대중적 공산주의 정당들은 소련의 몰락과 더불어 종말을 고했고,
중국이나 인도처럼 아직 유지되는 곳에서조차도 사실상 맑스레닌주의는 포기됨.
그리고 마르크스 사후 100주년 이후 20여 년 간 그는 다시 잊혀진 인물이 됨.
그러나 마르크스는 20세기와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중요한 사상가임.
오히려 소련의 몰락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레닌주의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맑시즘은 여전히 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 중 하나이며,
특히 1990년대에 등장한 자본주의 세계화는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예견했던 모습과 매우 비슷함.
그렇다 하더라도 21세기의 마르크스는 20세기의 마르크스와는 매우 다를 것.
20세기의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로 특징지워짐,
첫째, 혁명을 아젠다로 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의 분리,
둘째, 사회민주주의나 개혁주의적 유산 대 혁명적 유산의 대결,
셋째, 1914년에서 1940년대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19세기 자본주의와 부르조아 사회의 붕괴.
1929년에서 1960년 동안의 기간에는 자본주의가 쇠락하고 소련식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능가할 것이라는 견해가 팽배했고,
1960년 이후 이와 같은 사실이 명백해짐.
그렇지만 사회주의적 생산력이 자본주의적 생산력보다 우월할 것이라는 주장은 마르크스가 직접 언급한 내용은 아님.
마르크스가 언급했던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성장이 과잉생산의 주기적 위기를 만들어 내고 이 위기가 자본주의적 경제작동방식을 어렵게 만들고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
즉 자본주의는 본성상 사회적 생산양식을 허용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이었음.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의 사상의 핵심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나,
이는 사회주의 경제가 맑시스트적이어서가 아니라 마르크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모든 정당들이 이러한 이상을 공유하고 공산주의 정당이 이러한 이상을 실현시켰다고 주장했기 때문.
그러나 이러한 이상의 20세기적 형태는 끝장남.
소련식 ‘사회주의’나 ‘중앙집중식 계획경제’는 끝장났고 다시는 부활하지 못할 것.
이러한 사회주의는 얼마만큼 마르크스주의적이었나?
마르크스 자신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구체적 모습에 대해 의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언급은 이를 하나의 프로그램같은 것으로 설명했을 때 뿐이었음.
사회주의적 중앙집권식 경제이론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엔리꼬 바로네와 같으 비사회주의 경제학자로부터 시자되었음.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이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기 전 사회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았음.
맑스는 ‘계획’에 대해서 어떤 구체적 언급도 한 적이 없으며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했음.
이 과정에서 전시경제가 계획경제의 모델로 작용했음.
소련의 경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음.
반면에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미루거나 혼합경제를 채택함으로써 맑시즘을 변형시킴.
이들은 영국의 페비언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 개혁을 통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이행을 받아들임.
제1차 세계대전 후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이러한 개혁주의 정책을 수용했음.
중앙집권식계획경제와 사회민주주의적 경제 모두 사라지거나 후퇴한 상황과 더불어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논쟁도 사라졌음.
그러나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아직도 중요함,
첫째, 경제사상가, 둘째, 역사사상가와 역사분석가,
셋째, 사회사상가. 철학자로서의 평가는 보류.
가장 중요한 점은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잠정적 경제양식이며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집적되며 위기를 생산하며 스스로를 변형시키는 작동원리라는 그의 주장임.
II
마르크스와 21세기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소련식 사회주의 모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한편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생산력 증가 목도.
이로 인한 국민국가의 역할 감소와 사회민주주의 정책의 후퇴.
시장근본주의로 인해 국내적,
지역적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발생,
경제 위기 발생 가능성 증가.
마르크스의 저작은 시체가 아니라 계속 진보하는 끝없는 작업으로 다루어져야 함.
그 누구도 도그마나 하나의 정통으로 다루어져서는 안 됨.
한 편,
‘올바른’ 맑시즘과 ‘올바르지 않은’
맑시즘의 구분도 거부해야 함.
맑시즘적 연구양식은 다른 결론과 다양한 관점을 생산할 수 있음.
마르크스 사상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유효하고 적실함.
첫째,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의 지구적 역동성과 그 파괴력,
둘째, 내적 ‘모순’에 의한 자본주의적 성장의 매커니즘 분석.
우리는 21세기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예견할 수는 없음,
그러나 해답을 얻고자 한다면 마르크스의 질문들을 다시 물어야만 함,
그러나 이것이 마르크스의 제자들 또는 후예들의 대답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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