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
정신과 제20대
총선에서 나타난
호남민심
남가주 518민주화운동 기념회 주최
제
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좌담회 발표문
안태형, 2016년
5월 18일,
Los Angeles 생명찬 교회
1. 들어가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시, 김종률 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36년 전 그들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래서 그들이 앞서 갔던 그 길을 뒤늦게나마 따라가고자 한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해야 그들의 뒤를 따라갈 수 있을까? 인생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원칙은 명확해 보여도 현실은 복잡하고 판단은 항상 어려운 법이다.
2. 518정신의 역사와 현재
엊그제 광주에서 열린 제36주년 518 민중항쟁 전야제 민주대행진 행사에서 “오월 광주, 기억을 잇다, 평화를 품다”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보았다. 518 정신이 평화의 정신으로 승화되는 것을 보고 한 편으로는 뿌듯했으며 개인적으로도 518정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지점은 평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지금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이상주의적이거나 공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한민국 보훈처는 여전히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하고 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3년째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학살의 원흉 전두환은 자신이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며 광주학살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여전히 발뺌하고 있으며, 종편과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518이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헛소리를 해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가롭게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518 기념재단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당시 신군부 세력과 미군의 지휘를 받은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등을 외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역사적 사건”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되는 1987년 6월 항쟁의 동력이 되어 민주주의 쟁취와 인권회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정신을 민주, 인권, 평화, 통일 등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제기된 과제로까지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80년대 많은 의식있는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을 민주화운동으로 이끈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후 민주화 운동을 급진화시킨 계기로도 작용했다. 80년 광주의 참혹한 학살을 경험했던 많은 이들이 이 잔인한 ‘군사파쇼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 맑시즘이나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자신들의 이념으로 삼기 시작했다.
또한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사회에서 반미 운동을 대중화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항쟁지도부는 조금만 더 버티면 전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자인 미국이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지금 미국의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들어왔습니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미국이 전두환이 학살을 막고 광주시민을 도와주러 왔습니다.”라고 방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단지 자국민의 안전한 대피를 위해 항공모함을 파견했을 뿐이었고, 당시 한국을 동북아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서만 생각했을 뿐,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는 냉전시기 미국의 남미정책이나 중동정책 등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당시 미국이 한국군의 평시작전권과 전시작전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의 허락이나 암묵적 동의가 없었다면 공수부대 등 시민진압 병력동원은 불가능했다. 이로써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서울미문화원 점거사건이나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등 급진적 반미운동이 활발해졌다.
한편, 반미자주화 의식은 곧 북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계기로 작용했고, 이로 인해 운동권 중 일부는 곧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조선노동당, 한민전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이 관심이 결국 NL주사파라는 하나의 조직적 세력으로 이어져 이후 한국 정치사나 민주화운동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은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져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해 내지만 양김 분열 (운동권도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독자후보 등으로 분열)로 인해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게 된다. 그 결과 대통령으로 당선된 또 다른 학살책임자 노태우는 90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을 끌여들여 3당
합당을 이뤄내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한다. 이로써 광주를 비롯한 호남은 80년에 이어 10년만에 다시 한 번 정치적, 지역적으로 고립된다.
그러나
호남은 97년 대선 때 김대중 뿐만 아니라 (약 95%), 02년 대선 때 노무현에게도 (약 95%), 07년 대선 때 정동영 뿐만 아니라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승리한 유일한 지역은 호남뿐), 12년 대선 때 문재인에게도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승리한 유일한 지역은 서울과 호남뿐) 90% 이상의 지지를 계속 보였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을 전폭적으로 지지 (호남 25/31: 광주 7/7, 전북 11/11, 전남 7/13)했다.
4 제20대 총선에서 나타난 호남민심 분석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이 번 총선에서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국민의당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로 인해 호남이 왜 이러한 선택을 했으며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호남의 민심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어떤 이들은 호남이 그 동안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해왔던 상황에서 이제서야 벗어나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면서 이 결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다른 이들은 이제 ‘호남신격화’를 벗어던져야 할 때가 왔으며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도 벗어버리게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프레시안에 연재된 윤중대와 진중권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먼저 윤중대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413 총선에서 호남의 국민의당 지지를 ‘지역 이기주의’이자 ‘호남 고립’을 자초한, 앞으로 대선의 ‘야권 분열’을 예고하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호남 정치인들이 호남의 이익을 내세우는 것은 정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 행태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진중권은 호남이 민주당 몰표를 주면 ‘전라인민공화국’, 몰표를 안 주면 ‘퇴행적 지역주의’로 비난한다. 결국 뭘 해도 호남 지역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윤중대는 범개혁 진영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갈라진 것일 뿐이라며, 애초에 호남은 ‘반새누리 자유민주주의’의 기조를 버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진중권은 호남주의는 지역주의이며 일종의 클리엔텔리즘 (clientelism)이라고 비난한다. 클리엔텔리즘이란 선거 지지를 위한 보상으로 개인 또는 집단에 약속한 공공의 이익을 분배하는 것으로써 , 한 마디로 표 받은 대가로 예산을 퍼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중권에 따르면, 이는 바람직하거나 정상적인 정치행태가 아니며 ‘정치적 미성숙,’ ‘부패의 한 형태’일 뿐이다.
이에 대해 윤중대는 클리엔텔리즘으로 호남의 이익정치를 부정하는 것은 무리이며, 클리엔텔리즘이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개인이나 기업, 혹은 이익단체의 이해관계가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대변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표와 이익을 ‘거래’하는 것은 현대 정치의 기본 양상인데 진중권은 이익 투표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역 정치’역시 ‘계급 정치’, ‘성정치’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한 영역이며, 지역정치를 부인하는 것은 패권을 추구하기 위한 수사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호남이 더민주를 버린 이유는 평소에는 호남 정치의 모든 측면들을 지역주의로 싸잡아 비난하면서, 선거 때가 되면 다시 표를 요구하는 그 반복적 행위에 대한 저항이며, 국민의당을 뽑았다는 이유로 광주 학살에 대한 부채감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믿음마저 상실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번 총선에서의 호남의 투표행태에 대해 클리엔텔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진중권의 주장은 좀 과도한 측면이 있으며, 왜 호남이 이번 총선에서는 이전까지의 투표성향과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윤중대의 주장처럼 이번 호남의 투표행태는 클리엔텔리즘이라기보다는 이익투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호남의 투표행태에 대한 비판은 단지 영남패권주의의 지속이나 친노패권주의의 확장을 위한 것이라는 윤중대의 주장도 지나친 측면이 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호남홀대는 없었다는 실증적 주장에 대해 구체적 반론도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을 정치적으로 큰 차별성이 없는 범개혁진영으로 구분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호남이 이익투표에 기반해서 국민의당을 선택했으나 국민의당이 과연 호남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
5 결론
호남의
선택은 항상 옳은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리고 항상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호남의 이번 선택은 잘못된 건가?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다. 그렇지만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더민주도 호남민심 이반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당이 계속해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호남 입장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에게 졌다는 사실에 실망감이 컸는데,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세월호, 국정교과서, 한일위안부합의, 개성공단 폐쇄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재보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했으며, 내부적으로도 정당민주주의의 부재나 계파주의의 모습만을 보였다.
더 나아가 호남민심의 이탈은 2015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에 대비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호남이 결국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또
이번 선거에서도 국보위 경력을 가진 김종인 대표를 영입하면서 호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전략적 차원에서 전국정당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다보니 호남 (과 운동권)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한 점이 분명히 있다. 마치 민주당의 전국정당화 노력을 호남이 발목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거나 친노패권주의와 호남홀대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호남만으로는 정권교체가 힘들지만, 호남 없이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호남은
다시 돌아올 것인가? 다시 돌아 올 것이다. 단 더민주가 혁신하고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최경환 국민의당 국회의원 당선자 말처럼 이번 선거에서 호남은 안철수에게 마음을 준 것이 아니라 기회를 준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자 의석수만 보면,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이 23:3:2이지만, 지역구 득표율은 광주 56.33: 28.59: 2.86, 전남
43.77: 38.10: 11.64, 전북
42.19: 38.77: 9.77, 정당 득표율은 광주 53.34: 28.59: 2.86, 전남
47.73: 30.15: 5.65, 전북
42.79: 32.26: 7.55으로 국민의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보기 어렵다.)
지금 호남은 야당의 경쟁체제를 원한다. 그러나 내년 대선에서 야당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면 호남은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단일화된 야당후보가 누구라도 그 후보를 기꺼이 지지할 것이다. 광주의 한은 아직 풀리지 않았고 518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끝>
P.S. 이 글은 미주인터넷매체 뉴스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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