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일 월요일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 (강영안, 문학과 지성사, 2005) 중 2장 주체의 물음: 데카르트에서 레비나스까지 발췌요약

1. 근대에 관한 반성과 주체의 문제

유럽 철학은 주체를 중심으로 인식과 행위, 사회적 질서를 논의해왔다. 하지만 독일 고전 철학만큼 주체 문제에 집착해온 전통은 없다.

독일 철학은 실로 차례나 주체의 절대화를 경험한다. 번은 칸트에서 시작하여, 칸트 극복을 기치로 내걸었던 피히테, 셸링, 헤겔의 독일 고전 철학에서였고, 번은 자연주의와 역사주의를 비판하면서 초월론적 주체를 내세운 후설에게서였다. 주체 비판은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니체를 통해서 진행된다다른 하나는 후설 현상학의 초월론적 주체를 해체한 하이데거의 비판적 작업을 통해 진행된다.

2. 주체의 형성과 근대 형이상학

니체는 주체의 죽음논의의 선구자답게 주체는 주어진 것이 아니다. 만들어져 첨가된 , 뒤에 숨겨진 이라고 말한다. 좀더 단호하게 “’주체 허구다라고 하기도 한다.

“’주체 허구라는 선언에는 주체의 발생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계보학이 뒷받침되어 있다. 니체는 인간이 주체로 허구화되는 과정의 발단을 데카르트에게서 찾는다.

니체에 따르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명제는 이미 많은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체 자명한 명제가 아니다.

데카르트의 잘못은 사유하는 것은 하나의 행위이며 모든 행위에는 행위 주체가 있다 사실로부터 사유하는 주체도 존재한다고 믿은 있다니체는 이와 같은 추론은 문법적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문법적 관습 니체에 따르면 이미 논리학적, 형이상학적 요청또는 매우 강한 신앙 의해 주도되고 있다니체의 주체 비판은 서양 형이상학과 도덕 비판을 위한 전략이고 여러 전략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실체 개념은 주체 개념의 결과이지, 반대가 아니다. 우리가 영혼을, ‘주체 포기하면 실체 일반에 대한 전제도 없어진다.”

서양 형이상학은 니체에 따르면 하나의 거대한 이집트주의이다. 생생한 현실을 개념의 박제로 만들어버린 것이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은 생성을 부인하고, 감각을 부인하며, 역사를 부인하고 신체를 부인한다. 형이상학은 힘의 본질과 권력에의 의지를 부인한다형이상학은 모든 것을 정신과 개념과 불변하는 존재 속에 가두어버리고, 모든 것을 도덕화해버린다. 따라서 생생한 삶과 구체적인 현실은 이념과 사유에 종속된다. ‘주체’ ‘실체’ ‘원인과 결과’ ‘존재,’ 이와 같은 개념들은 생생한 존재를 미라로 만드는 도구들이다.

3. 근대 주체와 힘에의 의지

하이데거도 니체와 마찬가지로 근대 주체철학을 데카르트를 출발점으로 다룬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니체가 것처럼 강자에 대한 약자의 반란의 결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근대적 권력 주체의 등장으로 본다. 하이데거가 보기에는 니체 철학이야말로 근대 주체철학의 종결이자 완성이었다하이데거는 주체성의 철학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존재 사유의 길을 여는 철학적 기획의 목적을 두고 있다.

하이데거는 근대 특징을 한마디로 세계상의 시대 요약한다. 현대성은 자연과 역사를 포함한 존재자 전체가 하나의 으로, 앞에 세우고,’ 생산하는 인간의 대상, 표상으로 전락해버린 본질이 있다. 세계는 관조의 대상이나 신의 피조물, 또는 나를 에워싼 환경 세계가 아니라 내가 세우고 맞추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마음대로 바꿀 있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물의 의미 (‘존재자의 존재’) 인간에게 표상되고 맞춰지는 가운데, 다시 말해 대상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비로소 확인될 있다.

하이데거는 데카르트 철학을 철저히 해체해보고자 애쓴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앞에 세워짐으로 파악한 데카르트의 존재 이해는 현대 주체성의 형이상학 효시가 되었고 이것은 동시에 자연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근대 과학 기술의 형이상학적인 기초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데카르트적 주체 해체는 단지 형이상학의 관심사가 아니라 현대 기술 문명의 위기를 진단하고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매우 긴급한 과제로 등장한다.

데카르트는 현대 기술 문명의 철학적 기틀을 마련한 철학자이고 기술 문명은 하이데거의 해석에 따르면 인간을 존재자의 근거, 바탕, 기초로 보는 주체성의 철학 핵심이 있다.

4. 근대적 주체의 이중성: 데카르트와 칸트

그러나 데카르트를 막상 자세히 읽어보면 자아는 그렇게 일의적 존재가 아님이 드러난다. 자아는 얼굴을 하고 있다.

칸트 철학은 데카르트적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주체와 대상, 주관과 객관, 자아와 세계, 또는 인식과 존재의 분리를 극복하고 인식과 행위의 보편적 근거를 어디에선가 찾아야 과제를 칸트는 떠맡는다. 칸트의 해결은 이른바 사고방식의 혁명 통해 획득된다. 사고방식의 혁명이란 주체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것이다칸트는 주체를 인식과 행위의 중심에 두면서도 그것의 유한성에 대한 의식과 더불어 무한하게 실현해야 과제임을 철저히 의식한다.

독일 관념론 전통이 주체를 절대화했다면 이러한 절대화에는 스피노자의 영향이 자리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된다칸트 이후의 주체는 스피노자의 실체를 주체화 까닭에 사실상 신적 존재에 다를 없는 것처럼 보인다.

코기토의 자아가 존재와 인식을 근거짓는 절대적 아르키메데스의 점으로 해석될 , 이것은 해석의 차이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칸트에서부터 키에르케고어, 후설에 이르기까지 현대 주체성 철학의 기본 토대를 이루었다. 주체성의 철학은 서양의 형이상학을 존재 우선의 형이상학에서 의식 우선의 형이상학으로 전환시켰고, 의식 주체인 인간을 중심점으로 새로운 담론 체계를 생산하였다.

근대성의 문제와 관련해서 데카르트의 위치를 논의할 간과할 없는 것은 자아의 자기 분열과 주객 분리를 초래했고 이것은 극복되어야 문제로서 현대의 주체철학에 수용되었다는 점이다사유하는 자아와 현존하는 신체적 자아의 이분화는 칸트와 독일 관념론 철학에 하나의 숙제로 남겨졌다자기 분열 가운데서 자기 통해 분열을 극복하려는 운동이 근대성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있다.

주체의 죽음 관한 논의는 단지 데카르트적 코기토의 죽음을 선언하는 그치지 않고 절대 근거 혹은 최종 근거 (하이데거가 이해하는 의미의 주체’) 추구, 이성의 계몽을 통한 무한한 진보의 신화, 그리고 세계사를 신의 자기 생성과정으로 보는 역사신학에 종지부를 찍자는 움직임이다.

그럼에도 주체성의 이념 자체를 완전히 포기해야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까지 버리는 것과 다를 없다.

5. 탈근대적 주체: 니체, 푸코, 라캉

니체가 대안으로 생각하는 주체, 스스로 자기를 창조할 있는 자율적 주체는 신체성의 원리에 따라 몸으로서 존재하는 신체적 주체이다.

창조적, 자율적 주체의 권력에의 의지는 타인을 지배하기보다는 자신을 지배하고 통제할 있는 힘을 가지고자 하는 의지이다.

자신이 된다는 것은 따라서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지 않는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 그것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자기 긍정 세계 긍정, 그러면서도 끊임없는 자기창조로 이행할 있는 인간을 니체는 위버맨쉬,’ 넘어가는 인간이라 부른다.

니체의 대안은 급진적이고 반종교적이다.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 과거의 낡은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를 건질 있는 길은 힘에의 의지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힘에의 의지는 니체에게서는 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원리였다.

현대 철학에서 주체의 죽음 유행시킨 장본인인 푸코의 경우를 보자. 그가 말년에 자신의 문제는 결국 주체 문제였음을 토로하면서 그리스적 자기의 돌봄 주체의 삶에 대안적 사유를 터줄 있다는 믿음을 표현한 것도 그의 사유가 끝내 니체적 사유의 안에서 반복된 움직임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푸코는 주체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현상학이나 실존주의처럼 주체에 대한 선험적인 이론을 가지고 주체의 형식에 관해 물음을 던지는 것을 거부했다푸코는 주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각각 다른 형식의 주체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는가 하는 것을 알고자 하였다.

푸코가 주체의 존재를 역사적으로 구성해보고자 했다면 라캉은 정신분석학적 통찰을 통해 주체의 존재를 그려보고자 사람이다라캉이 보여준 것은 주체는 자기 자신과의 소외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는 점이다.

라캉이 보는 주체 구성의 계기를 우리는 가지로 세분해서 있다. 첫째, 나는 즉각적 욕망 충족을 연기할 주체가 있다둘째,, 나는 타자와 구별할 있을 그때 주체로 있다셋째, 허용과 금지를 명시하는 법이 있는 곳에 그때 비로소 주체가 있을 있다.

라캉의 주체는 타자의 욕망과 관련해서 욕망의 주체로서 존재한다그러나 그러한 타자는 결코 나의 결핍을 채울 없다. 그러므로 나의 욕망은 끊임없이 욕망으로 존속할 있다. 나의 존재는 타자에 의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존재가 타자에 의해 완전히 충족되거나 소진되지 않는다.

6. 윤리적 주체: 근대성과 탈근대성을 넘어서

레비나스는 라캉과 더불어 타자를 주체 구성에서 중요한 계기로 생각한 철학자였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사유만이 진정한 주체를 회복할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레비나스는 다른 ,’ 타인은 결코 환원될 없는 사람임을 강조한다. 다른 이의 존재를 그토록 강조한 까닭은 주체의 주체성을 올바르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레비나스는 전체 속에 귀속될 없는, 이른바 무한자 이념을 바탕으로 주체성의 변호 시도하였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사유는 서양 철학 전통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서양 철학은 존재론이었다느 것이 그의 생각이다존재론은 언제나 전체성을 지향한다.
서양 철학은 인간의 인격성을 상대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서양 철학에 대한 레비나스의 비판이다.

얼굴 없는 사유의 대표적 경우를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에서 찾고 있다…. 하이데거 철학은 서양 전통 철학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담고 있다…. 하이데거의 대안은우리가 스스로 은인자중하고, 침잠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사유 태도라고 있다. 이것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존재에 대한 열림, 존재에 대한 개방성을 뜻한다.

레비나스가 후기 하이데거를 문제삼는 것은 대목이다. 하이데거는 누구보다 기술적 사유, 지배적 사유의 본질을 꿰뚫은 사람이지만 그의 사유는 탈윤리적이며, 탈인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레비나스는 그의 후기 철학에서 발전시킨 주체성의 의미, 수동성보다 수동적인주체, 타인의 짐을 대신 있는 책임적 주체를 하이데거의 개방성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안한다.

레비나스의 철학은 타자의 사유’ ‘타자의 철학또는 타자의 형이상학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 또는 주체를 다른 계기를 통해 해소하거나 소멸시키는 것에 대해 그는 강력하게 반대한다타인을 위해, 타인 아래서, 타인의 짐을 짊어지는 수동적 윤리적 주체는 타인 아래 종속되어 타인을 아래에서 떠받쳐줌으로써 주체가 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