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작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으로 권력이
승계될 당시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후계자 수련기간도 짧고 나이도 어린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체제가 얼마나 오래갈 것인지에 대해 모아져 있었다. 그러나
북한 리더십 교체 후 9개월이
지난 지금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자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더 나아가 파격적인 것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부인 리설주를 공식행사에서 노출시킨다거나 현지지도 때 북한주민들과 친밀한 스킨십을 보여준다거나) 김정은의
새로운 통치스타일이 결국 북한의 개혁개방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마저 낳고 있다. 그러나
과연 김정은의 새로운 리더십이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질 것인지, 김정은이
개혁을 하더라도 어떤 성격의 개혁을 할 것인지, 이러한
개혁이 성공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현재 김정은의 개혁은 예상보다 일찍 시작되었으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영호
총참모장의 해임으로 시작된 군부에 대한 개혁이나 6.28방침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시행할 데 대하여”로 나타나는 경제개혁 등은 김정은식 개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개혁은 정치개혁보다는 경제개혁, 아래로부터의 개혁보다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김정은의 개혁은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을 동시에 추진했던 고르바쵸프의 구소련식 개혁보다는 정치개혁은 하지 않은 채 (또는 최소한으로만 하면서) 정치권력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중국식 개혁이나 베트남식 개혁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개혁을 추진하고자 하더라도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은 필연적으로 딜레마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먼저, 경제개혁은 시장경제, 경제개방, 시민사회 성장 등을 가져오고 이와 같은 변화는 결국 북한의 정치개혁 요구를 불러올 것이다. 또한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나
2009년 화폐개혁 실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김정은식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경제개혁에는 중국의 정치, 경제적
지원여부나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일관계 등의 변화 등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 중에서도 북미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 하는 것이 핵심인데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 해결을 강력하게 제기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확대하고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김정은이 계획했던 개혁을 계속 실행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의 경제개혁 개방은 북한의 내부사정 뿐 아니라 남북관계의 개선과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궁극적으로는 한반도평화체제 정착 등에도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북한의 핵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의 대외정책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한 번 살펴보자. 이 문제의 핵심은 김정은이 김정일과 다른 핵정책을 취할 것인가이다. 사실 북한과 미국과의 핵협상은 김정일이 사망 직전까지 직접 챙겨왔다. 그렇다면
김정일은 핵을 포기할 의도가 있었는가? 사실 김정일은 제1차 북핵위기 때인 1994년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제네바협정을 맺으면서, 제 2차 북핵위기 때인 2005년에는
다자회담인 6자회담을
통해 9.19공동성명에 합의하면서 모두 두 차례 핵포기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합의는 모두 실행단계에서 중단되었고 북한은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을 통해 마침내 핵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과연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가, 또한 포기한다면 어떤 조건에서 포기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지금은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과 우라늄핵시설 공개 등으로 인해 핵협상이 한층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 더 나아가 김정을 사후 북한이 핵을 김정일의 정치적 과업으로 선언하고 2012년 개정헌법에서 핵보유국으로 명시하면서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도 의문스럽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북한은 아직 미국과의 대화채널은 여전히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핵포기 조건으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 철폐 (경제제재
해제,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북미 국교정상화 등)를 요구하고 있으나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생각해볼 때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의 결단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기본적으로 북한과 미국과의 협상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북한의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한국은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관계의 정상화로
북미관계의 개선을 추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6자회담 의장국이자 북한에 현실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북한의 핵의도와 핵정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를 바탕으로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북한의 핵문제에서 뚜렷한 변화를 발견하기는 어렵고 북한 대외정책의 변화는 2013년 이후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김정은이 올해 4월 광명성 3호의 발사를 유예하거나 포기했다면 북미관계에서 많은 진전을 이룰 수도 있었으나 북한은 좋은 기회를 저버렸다. 북한은
광명성 3호 발사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는 미 오바마 대통령의 신뢰를 잃은 것이다. 오바마는 2009년 북한의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태 등으로 북한에 대해 계속 실망감을 표시해 왔는데 올해의 광명성 3호 발사는 그 실망감에 마지막 확신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물론 광명성 3호 발사는 김정일의 유훈이었고, 군부의
입장을 고려해야 했으며, 성공적인
발사로 강성대국을 상징적으로 선포하고 싶은 욕심 등을 생각해
볼 때 김정은 입장에서 이를 포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의 결단이 중요하며 광명성 3호 발사가 결국 북한 대외정책의 혼선 (2.29합의의
폐기)을 초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판단이 올해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올해 11월로 예정된 미국대선과 12월로 예정된 한국대선 결과에 따른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간단히 전망해 보고자 한다. 미국 대선은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와 오바마 현대통령 사이의 대결이 예정되어 있다.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강경한 대북정책을 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현재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나 존 볼튼 전 유엔주재 미대사 등이 롬니 대선캠프에서 대외관계에 대한 적극적인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북강경론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집권 1기 때보다 강경한 대북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만약 올해 재선에 성공하고 북한이 화해제스처를 먼저 취해온다면 대화와 협상을 앞세운 유연한 대북정책을 택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의
대선 후보들은 모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먼저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이명박 정부보다 유연한 대북정책을 채택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새누리당 지지층에 대한 정치적 고려 이유로 일관성 있는 대북 유연화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야권후보들은 대북포용정책, 한반도비핵화, 한반도평화체제 등의 목표를 공유하면서 큰 틀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안철수의 경우 구체적인 정책이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이러한 원칙이 어떻게 정책으로 구체화될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고, 문재인의
경우 대북정책이 구체적이지만 참여정부의 경험을 고려할 때 그 실행 여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손학규의
경우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 등 통일한국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야권의 대선후보로 선택될 가능성이 가장 낮아보인다.
결론적으로 미국대선과 한국대선
조합의 결과에 따라 상이한 대북정책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미 공화당과 한국 새누리당의 조합의 경우, 한미공조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대북정책은 훨씬 강경해지고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미 공화당과 한국의 야권후보 조합은 한미공조 갈등과 미국이 주도하는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미 민주당과 한국 새누리당의 조합은 한미공조 갈등과 일관성 부족한 대북정책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으며, 마지막으로 미 민주당과 한국 야권후보의 조합은 한미공조에도 긍정적이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개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외부에서 강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개혁개방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도록 외부환경을 마련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끝>
이 글은 2012년 9월 11일 제 19차 통일전략포럼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며 LA 평화의 교회 38주년 기념회지 평화의 울림 (2912년 12월, pp. 36-38)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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