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3일 토요일

기독교와 과학: 신앙과 지성의 바람직한 관계

기독교와 과학: 신앙과 지성과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A Message for COWORK)

분별력이 너를 지켜 주고, 명철이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 (잠언 2: 11)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과 함께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한 번 얘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그러나 먼저 여러분들께 고백하자면, 저는 목회자도 아니며, 신학자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과학에 대해서도 역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평신도 크리스천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고민해왔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제 생각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이 문제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이 주제를 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킹 제임스 버전 영문판 성경을 보면, 분별력은 영어로 discretion이고 명철은 understanding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discretion은 임의나 자유재량으로도 번역될 수 있고 understanding은 이해나 지식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자유로운 사고나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모든 기독교나 개신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나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제가 생각하기에 대체적으로 반과학적 또는 반지성적 입장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진화론창조론,” 혹은 지적 설계론등을 동시에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실 진화론은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완벽한 이론도 아니고 아직도 증명되고 해결되야 할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과학이론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다양한 생명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이론이기도 하며, 다른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더 나아가 철학 분야에까지 큰 영향력을 주고 있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진화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등이 진화론에 기반한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하나의 과학이론으로 학교에서 교육시키는 것이 당연하며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과학의 정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듯 합니다. 과학은 어떤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닙니다. 물론 과학의 목표가 절대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오히려 과학은 지금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나 이론이 언제든 진리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 과학은 비판에 열려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이론이 부정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반증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과학적으로 더 설득력 있는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매우 유용한 틀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이론이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된다고 해서 그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는데 나름대로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증법을 생각해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과학의 정의와 역할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학이나 이성에 기반한 지식이 우리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결국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 아들이 지금 세 살인데, 가위로 모양을 오려서 이것저것 만들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위가 제 아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고 해서 가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아이의 창조성이나 지능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물론 가위나 칼로 인해 아이가 다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위나 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올바른 교육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미리 얘기해 주는 것이 최선이 방법이며, 설령 다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과학이나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과학이나 지식만을 맹신한다면, 사실 과학에 대한 맹신 자체가 넌센스이며 모순어법입니다만, 자칫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학지상주의는 물질주의로 이어질 수 있고 이성에 대한 과도한 확신 또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서양 중세에 마녀사냥이 있었지만 이성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근대 이후에도 홀로코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이나 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잠언 1 7장의 말씀처럼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천들이 반과학적이나 반지성적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과학과 이성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도구이므로 잘 사용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과학과 이성에 대해 눈 감는다면 우리는 외눈박이나 터널비전만을 지닌 기독교인으로만 남을 것이며 이러한 반과학적이거나 반지성적인주장은 기독교의 본질마저 왜곡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반과학적 또는 반지성적인 태도를 취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과학과 지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세상이 과학과 지성을 추구할수록, 믿음에서 멀어지고, 기독교는 그 위세를 잃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이 신앙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 둘은 추구하는 바가 다르며, 과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영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과학과 신앙 사이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과 신앙은 상호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과학과 신앙 사이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면, 둘 모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하고 유지하는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과학과 지성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쉽게 생각해 보더라도, 어떻게 고고학, 역사학, 언어학 등의 학문과 지성의 도움없이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우리의 삶에 제대로 반영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리고 특히 이 자리에 계신 COWORK 예배자 여러분들은,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해서, 열린 마음으로 이성과 과학의 힘을 빌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앞장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News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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