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413 총선과 한국정치의 과제
안태형 (국제관계학 박사)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여소야대 국회가
16년 만에 재현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을 한 석 차이로 이기면서 제1당이 되었다.
선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데에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낡은 여론조사 방법과 이 여론조사 결과를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계속 보도하며 확대재생산했던 언론의 책임이 크다. 어쨌든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배자는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 패배했다. 첫째, 공천과정에서 발생했던 친박 (혹은 진박) 대 비박 간의 이전투구였다. 이로 인해 많은 지지자들이 실망하고 등을 돌렸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이고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소극적 대처,
역사 국정교과서 강행,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한일위안부 합의,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과 균형외교의 실종,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테러방지법 제정 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견제심리가 이번 투표에 반영되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가장 큰 승리자다. 더민당의 승리는 김종인과 문재인 두 탑 체제가 끝까지 팀웍을 유지하면서 완주했고,
공천과정에서 참신한 인물들을 영입하면서 새로운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기에 가능했다. 또한 공천에서 탈락했던 이들이 중심이 된 ‘더겄유세단’도 공천과정에 실망한 전통적인 지지층이 떠나가지 않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또한 그 동안 많은 잘못과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권자들의 반새누리 정서에 기반한 ‘반사효과’를 누렸다는 점이다.
국민의 당은 이번 선거의 또 다른 승리자다. 국민의 당의 중도전략이 국민들의 지지와 동의를 어느 정도 얻어내면서 기존의 정치권에 실망한 사람들의 표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정의당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뒀다.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다가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표를 국민의 당에 많이 빼았겼다. 정의당은 이제 더 이상 심상정,
노회찬 등의 개인플레이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팀플레이를 이끌어낼지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반대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국정수행에 있어 항상 국민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또한 이번 선거는 국민들이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국민의 당에 대한 전국적인 지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고, 영남권에서 야당후보들이 그리고 호남권에서 여당후보들이 이전의 선거보다 많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제 모든 정당이 이러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어느 정당이든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번 선거결과로 인해 야당이 내년 대선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번 총선 전까지 야당의 미래는 암울했으며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제는 야당지지자들의 단순한 희망을 넘어 기대까지 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정당민주주의의 정착과 한국정치의 발전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먼저 정당민주주의의 도입이 시급하다.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은 이미 높아졌는데 이번 선거를 앞두고 대부분의 정당이 공천과정에서 봉건적이고 구시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누리당은 ‘공천’이 아니라 ‘박천’이라는, 더민당은 ‘셀프공천’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으며,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이나 더민당의 ‘시스템 공천’은 그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국민의 당도 공천과정에서 심판보던 사람이 갑자기 선수로 등장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후진적인 정치문화 개선과 정당민주주의 확립이 시급한 이유다.
둘째, 한국정치발전을 위해 선거법 개혁이 시급하다. 먼저 선거운동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선거비용은 규제할 필요가 있지만 선거운동은 규제를 풀어 정책선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둘째, 지역구 수를 줄이고 비례대표 수를 늘려 국회의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선거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가장 합리적으로 유권자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적어도 한국의 지역주의 투표행태를 개선하고 유권자의 사표를 방지하기 위한 중대선거구제의 도입 등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논의를 촉구한다.
이 글은 내용이 축약되어 LA 미주중앙일보에 시론으로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