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8일 월요일

트럼프 탄핵 정국이 북미협상에 미치는 영향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노력이 없었다면 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미국의 근본적인 대북정책 변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역설적으로 상황에 따라서는 북미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임을 뜻하기도 한다. 그 상황이란 다음과 같다. 하나, 트럼프의 북미관계 개선 의지 약화. , 트럼프의 전격적인 대북정책 방향 전환. 마지막은 트럼프의 사임이다. 공교롭게도 하루아침에 미국 대선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른 트럼프 탄핵 조사는 이들 상황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북미 핵협상의 중대한 국면에서 미국 정치권이 탄핵 정국에 빠졌기 때문이다. 향후 북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크라이나 의혹’… 탄핵 소용돌이

탄핵 조사는 미국 야당 민주당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탄핵 조사를 촉발한 정치적 배경은 일명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다. 내용은 이렇다. 7 25일 트럼프가 군사원조 중단을 무기로 야당 유력 정치인에 대한 뒷조사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요구했다는 의혹이다. 트럼프가 뒷조사를 요구했다고 알려진 야당 유력 정치인은 현재 민주당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과 아들 헌터.

헌터는 2014년 우크라이나 최대 천연가스회사 브리스마홀딩스 이사가 됐다. 2016 3월 현직에 있었던 바이든 전 부통령은 페틀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미국의 10억 달러( 22070억 원) 보증 철회를 거론하며, 브리스마 비리를 수사하려던 빅토른 쇼킨 검찰총장의 해임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는 9월 중순 미국 언론들이 정보기관 내부고발자의 주장을 토대로 트럼프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수사를 종용했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앞서 트럼프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에 어떤 외압도 없었다고 부인해왔다. 그러나 통화 며칠 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자 통화 녹취록 공개를 결정했다. 9 25(현지시간) 트럼프는 녹취록 공개 직후 뉴욕 유엔 총회 기자회견에서 어쨌든 압력은 없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 마녀사냥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군사원조 중단을 무기로 야당 유력 정치인에 대한 조사를 압박했다면,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급기야 미 하원은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 위반이라며 공식 탄핵절차 착수를 선언했다.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녹취록 그 자체가 스모킹 건’”이라며 만약 대통령 측근들이 이런 사건을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일로 생각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위험에 빠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탄핵 조사 전격 개시한 민주당 속내

전문가들도 트럼프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탄핵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외교잡지 포린폴리시 기고글에서 트럼프 탄핵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트럼프는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직 수행과 자신의 부동산 사업 사이에서 수많은 이해충돌을 보였는데, 바로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그 정점을 찍은 사례라고 일갈했다. 대통령이 외교 문제를 국익이 아닌 사익(대통령 선거 재선)을 위해 이용하는 행위는 당연히 탄핵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실제 탄핵당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사안의 중요성과 국민 여론, 탄핵 절차를 고려할 때, 트럼프가 실제 탄핵당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탄핵되려면 하원의 과반수 이상, 상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확률은 매우 높다. 과반인 218명만 찬성하면 된다. 현재 민주당 하원의원은 235.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지금까지 트럼프 탄핵 찬성 의사를 밝힌 민주당 의원은 202명이다(현지시간 9 26일 기준). 나머지 33명 중 16명만 더 찬성하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다.

그러나 하원이 탄핵소추안을 결의하더라도 탄핵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상원이다. 3분의 2 이상이 대통령의 유죄를 인정하면 탄핵이 가결된다. 그런데 상원은 트럼프가 소속된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 51, 민주당 47, 무소속 2석이다.

관건은 탄핵 추진 과정이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트럼프와 민주당 간 극단적 대립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정치적 생명을 끝낼 수도 있지만, 되레 민주당에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 양측 모두 정치적 명운을 걸고 벼랑 끝 일전을 펼치게 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트럼프 탄핵 조사를 전격 개시한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의 레임덕(임기 말 지도력 공백현상) 현상을 가속화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바이든 전 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고, 그로 인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낙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부에서는 그보다는 트럼프가 입게 될 정치적 출혈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큰 양보 하기엔 정치적 부담 커

탄핵 카드는 한반도와 북미관계에도 상당히 중요한 변수다. 전망은 비관론과 낙관론으로 나뉜다. 워싱턴 정가가 탄핵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동안 북미 실무협상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대표적 비관론자인 미국 케이토 연구소 덕 밴도우 선임연구원는 최근 미국 외교전문 매체 내셔널 인터레스트(the National Interest) 기고글을 통해 트럼프가 집권 초에는 임기 안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하노이 정상회담 합의 불발 이후 현실적인 한계에 봉착했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제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미국 정치권이 탄핵 정국으로 급선회하면서 북미협상 등 대외 현안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며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지연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SLBM 발사에도 대북 협상판은 깨지 않겠다는 기조를 취하고 있지만, 10 5(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국 결렬됐다. 북측 협상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미국과의 회담을 끝낸 뒤 북한대사로 돌아와 협상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됐다미국은 협상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연말까지 더 숙고해 볼 것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진행되더라도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소재한 워싱턴앤드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가르치는 이인엽 교수는 정치적 입지가 약화된 트럼프가 싱가포르 북미합의 때처럼 북한과의 협상에서 또다시 큰 양보를 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에 또다시 양보했다는 비난을 피해기 위해서라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때처럼 협상 결렬을 선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의회의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당시, 낸시 펠로시 하원 의원은 트럼프가 북한에 성급한 양보를 했다며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 바 있다. 여론은 여전히 비판적이다. 6 11일 워싱턴에서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주최로 열린 개성공단 설명회에서 몇몇 의원들은 개성공단의 정치적 상징성과 재개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공단 재개를 비롯한 남북 경제협력 문제가 제재와 연계된 대북 거래라는 포괄적 맥락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나선 올 10 2. 미국 의회에서 강경론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의원은 10 2(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이 미국인들의 안전에 분명한 위험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썼다. 그는 지금까지 구체적 비핵화 시도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이런 하찮은 독재자와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어떤 노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릭 스콧 의원도 이날 미국 뉴스 프로그램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살인적인 폭군인 김정은과 외교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3차 정상회담 성사시켜 외교 치적 부각

반대로 트럼프가 정치적 위기의 돌파구로 북미 협상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무협상의 조속한 재개로 3차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외교적 치적을 부각하려고 할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가 북핵문제에서 성과를 내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 한다면, 탄핵 정국이 한반도 정세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주한인 민간공공외교 단체인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 최광철 대표는 트럼프가 정치적 위기를 돌파구로 삼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할 것이고, 북한 또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화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수는 북한의 입장과 태도다. 정치적 입지가 약화된 트럼프와의 협상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냐가 최대 관건이다. 미국 정권교체기마다 북한은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북한은 1994년에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맺은 제네바 합의가 부시 W. 대통령의 집권으로 2002년 결국 무효화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 트럼프 협상의 기술 역으로 이용?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대북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점을 근거로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또 트럼프가 어느 때보다 외교성과가 절실하다는 점을 간파한 북한이 자신에게 유리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협상에 적극 임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트럼프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미국 언론인 마크 포럽캔스키(전 엘에이타임즈 국제 에디터)김정은이 이번 기회를 이용해 트럼프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정은이 트럼프의 협상의 기술을 역으로 이용할 것이란 얘기다.

물론 탄핵 정국이 북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지형의 변화, 탄핵 조사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트럼프에 대한 북한 태도와 입장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미국 사회 내 여론이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더 우세하다는 점이다. 과연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까.

P.S. 이 글은 신동아 11월호에 발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