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술문명의 극복
5-1 존재의 역운과 ‘작품의 철학’으로서의 하이데거의 철학
현대기술문명에서 지구와 인간이 황폐화되고 있는 사태의 근원이 플라톤 이래의 존재망각에 있다면 지구와 인간의 황폐화를 극복하는 길은 존재망각에서 깨어나서 존재를 회상하는 데에 있다.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의 종점에서 나타나게 되는 기술적 사고의 전일적인 지배는 존재망각의 불가피한 운명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적 사고의 지배는 어떠한 도덕적 훈계나 윤리적인 태도를 통해서 제어될 수 없고 오직 존재에 대한 새로운 근본경험을 통해서만 제어될 수 있다.
후기의 하이데거는 기술문명과의 대결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철학적인 사유가 갖는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보다 첨예하게 자각하게 된다.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자신을 그때마다 다르게 보내는 역사적인 운명으로 존재한다.
하이데거에게 존재라는 이름은 역사적 세계들의 연속성이 갖는 통일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러한 통일 안에서 존재의 비밀은 각 세계와 세계들의 의미와 통일의 원리로서 나타난다…
(존재가) 하나의 역사적인 세계를 성립시키는 근거인 한,
그것은 역사적인 경험 안에서 발견되고 경험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역사적 상대주의를 주창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다만 그는 역사적 상대주의가 이른바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철학에 대해서 갖는 강점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개현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방식들 중 하나로 예술을 들면서 각 시대의 예술을 통해서 존재의 그때마다의 역사적인 개현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하이데거는 국가의 건립 역시 존재의 진리가 개현되는 근본방식들 중 하나라고 보는바,
국가의 본질도 그것이 구현하는 존재의 진리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된다.
국가의 본질은 헤겔에서는 절대자의 현존으로 나타나며 마르크스에서는 전혀 다르게 경험되고 있다.
양자는 시간적으로는 극히 가깝지만 존재 의미의 역사에서는 각각 다른 시대에 속하고 있다.
후기 하이데거의 사유는 규범적 의미를 갖는 그때마다의 역사적 세계에 대한 해석학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막스 뮐러는 하이데거의 사유를 Meta-Physik이 아니라 Meta-Historik이라고 부르고 있다.
메타-히스토릭은 초월론적 철학적이면서도 해석학적이고 역사학적인 세계해석이다.
인간의 과제는 (이렇게)
그때마다 다르게 자신을 개현하는 존재에 자신을 열고 그것의 소리에 청종하는 것이다.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때마다의 역사적 세계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규정한다.
5-2 기술문명의 극복-수동적 사유의 철학
하이데거는 현대에서 존재 전체는 불안이란 기분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불안이란 기분에서 존재는 ‘우리가 존재자를 지배하려고 할 경우에는 존재자에게서 빠져나가 버리고 자신을 은폐하는 것’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가 존재자에 대한 지배의지를 버리고 불안이란 기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에 우리 자신을 열 때,
존재는 존재자에 다시 깃들게 된다.
초기의 하이데거는 불안이라는 기분을 모든 시대에 나타나는 기본으로 보지만 후기의 하이데거는 그것을 현대기술문명의 공허한 정체를 드러내면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이행을 준비하게 하는 기분으로 보고 있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존재자의 지배자가 아니라 존재의 파수꾼이 되는 것을 통해서만 현대기술문명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5-3 후기 하이데거의 철학과 인간의 변혁
하이데거는 현대인을 규정하는 지배욕이 근원적으로 존재망각에 의한 존재 상실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인간은 존재 상실에서 비롯되는 공허감과 불안을 다른 인간을 비롯한 존재자들에 대한 지배를 통해서 극복하려고 하면서 그러한 지배욕을 도덕적인 용어로 정당화한다.
후기 하이데거의 철학은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어떻게 존재가 망각되어 왔는지를 반성하는 것을 통해서 현대인의 지배욕과 우상숭배 그리고 자기기만을 극복하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지배욕과 자기기만이 궁극적으로 존재 상실이라는 본질적인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보면서 존재에 대한 회상을 촉구한다.
6 행위와 거주에 대한 성찰
6-1 행위의 본질에 대한 성찰
하이데거는 행위의 본질은 ‘완성하는 것Vollbringen’
혹은 ‘현출하게 하는 것Hervorbringen’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출하게 한다는 것은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존재의 진리 편에서 보면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 존재의 진리가 존재자에 현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행위는 능동적이지도 수동적이지도 않으며 능동적인 것과 동시에 수동적인 것이다.
하이데거는 행위를 본질적인 의미의 행위인 ‘현출하게 하는 것Hervorbringen’과 비본질적인 의미의 행위인 ‘작용을 가하는 것Wirken’으로 구별하고 있다.
‘작용을 가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주관적인 목적에 맞게 존재자를 변형시킨다.
‘현출하게 하는 행위’는 존재자의 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의 진리 자체가 그 자신을 드러나게 한다.
‘현출하게 하는 행위’는 사실은 어떤 존재자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서 존재 전체의 진리를 개현한다.
6-2 거주
하이데거는 유한한 인간이 지상에 존재하는 방식을 거주Wohnen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러한 거주는 인간이 세계 안에 단순히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진리를 존재자에 현현하게 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거주야말로 유한한 인간의 행위를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행위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후기의 하이데거는 존재 자체가 근원적으로 개현된 세계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 그것을 하늘과 대지 그리고 신적인 것들과 죽을 자로서의 인간 사이의 내밀한 관계망으로서 사유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과제를 ‘사역으로서의 세계가 각각의 사물들에게 깃들여 있는 것으로서 경험하는 것과 아울러 사물을 세계라는 열린 터에서 자신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경험하는 것’으로서 해석하고 있다.
하이데거에서는 신과 그 외의 존재자들 간의 위계질서도 인간과 그 외의 존재자들 사이의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세계를 집수하는 것으로서 존재하고 세계는 각 사물에게 각각의 고유한 본질을 선사하는 것으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존재자들 사이의 위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사역으로서의 세계도 사물에 깃드는 방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사유되고 있다.
우리가 사역으로서의 세계를 보호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것이 깃들어 있는 사물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들과 관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감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사유라고 말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사유를 의미하는 독일어
Denken을 감사를 의미하는 독일어 Danken으로부터 해석하고 있으며,
이런 종류의 감사야말로 전통형이상학에 의해서 망각되어 버린 진정한 사유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사유하는 존재라는 것은 감사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7 하이데거 철학의 성격과 의의
7-1 초월의 철학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사명은 존재를 향해서 자신을 열면서 그것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막스 뮐러는 이러한 초월을 세 가지 계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로 초월은 대상에서 존재라로의 초월이다…
둘째로 초월은 환경세계로부터 세계 자체로의 초월이다…
셋째로 초월은 주체로서의 나나 인간 일반으로부터 존재 자체로의 초월이다.
7-2 총체적인 깨어 있음의 철학
이렇게 존재를 향해 초월하는 것,
다시 말해서 존재의 관점에 서는 것은 총체적으로 깨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선반성적인 일상세계에 대한 반성적인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과학기술의 방향으로서…
존재자를 대상화하여 그것의 작용법칙을 파악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지배를 확보하려는 방향이다.
이에 대해서 하이데거가 취하는 방향은…
선반성적인 일상세계가 ‘존재자 자체의 진리가 개현되어 있는 근원적인 세계에 뿌리박고 있는 비본래적인 세계’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7-3 기쁨의 철학으로서의 하이데거 철학
기쁨은 우리가 현실의 모든 것을 고귀한 것으로 존중하게 될 때 갖게 되는 기분이다.
우리는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들에 대해서는 쾌감을 느끼는 반면에 고귀한 것과 관계할 때는 기쁨을 느낀다.
의미와 기쁨에 충만한 삶은 자신이 접하는 모든 인간과 사물을 존재의 현현으로 경험하면서 그것들 자체가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삶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갖는
(이러한) 유일회성과 독자성에 대한 감각이 바로 기쁨이다.
하이데거의 감사의 철학은 존재에 대한 지배를 꾀하는 근대의 주체성 철학에 대한 대안이다…
하이데거는 ‘근원적인 세계의 풍요로움 안에 거주하는 것Wohnen’을 현대를 지배하는 도구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8 맺으면서
초기의 하이데거는 불안이란 기분을 인수하면서 죽음으로 선구하는 현존재의 실존수행이 근원적인 세계가 개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기의 하이데거는 현존재를 세계 개현의 근거라기보다는 세계를 존재 자체가 현존재를 통해서 개현된 것으로 보게 된다.
후기의 하이데거에서는 존재 자체가 심연적인 근거로서 나타나는 것이며 현존재는 이러한 존재 자체의 진리에 응답하면서 존재의 열린 터에서 드러나는 존재자 전체의 진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불안이란 기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무 내지 존재의 진리가 근원적인 아프리오리라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가 존재의 진리에 청종함으로써 존재자 전체의 진리가 드러난다.
존재는 그것을 대상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엄습해 오는 존재의 운동을 함께 수행하는 것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하이데거의 존재물음이란 존재가 이렇게 자신의 진리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귀환하면서 그것을 새롭게 파악하려는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