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십 년간 자본주의 체제의 기능장애는 지속되고 있다.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자본주의 중심부의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뚜렷한 신호다… 이윤율의 저하, 경제의 금융화와 벨 에포크 시대, 그에 이어지는 금융과 산업의 동시적 위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확히 예언했던 것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경제구조는 내적 동력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위기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이윤율 저하 법칙은 이를 간단히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시대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반체제운동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이다.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 I: 역사론
실제 역사적 사회구성체에 대한 마르크스의 논의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이 책은 [자본]
제1초고이다)에 포함된 ‘전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이뤄진다.
이 장에서 마르크스는 사회구성체가 연속적으로 교체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원시공산제가 여러 구성체로 전환된다고 쓰고 있다…
고대노예제가 봉건제로 단선적으로 이행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필연성도 기각된다…
서유럽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이행했다면 그 이유는 봉건제 자체의 내적 동력이 아니라 독특한 ‘역사적 맥락’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의 목적은 자본주의 구조의 분석이지 사회구성체의 역사적 이행단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적 이행의 필연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저작은,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위대한 점은 경제적 분석과 정치적 갈등,
사회 문화적 현상을 결합시켜 분석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정치적 현상을 경제적 갈등으로 환원시켜 분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를 자율적 심급으로 다루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자본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에 대한 분석이다.
홉스봄은 여타 사회주의자들이나 생디카리스트들,
아나키스트들과 마르크스를 구별하는 것은,
그가 노동자들의 독립된 정치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라고 지적한다.
노동자운동은 경제적인 요구와 정치적인 요구를 결합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의 독립된 정치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운동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연대의식,
계급의식을 만들어내며,
이런 계급의식을 토대로 한 노동자들의 정치적 조직화가 노동자운동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의 정치적 상속자들
전후 서구 공산당이 유로코뮤니즘으로 이행한 것은 공산주의자들조차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급진적 개혁정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서구에서 사민주의와 볼셰비즘이 개혁주의로 수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수렴은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좌파 정당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것으로 참담하게 귀결된다.
마르크스의 지적 상속자들
20세기 전 역사에 걸쳐 학문세계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분명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학에서는 언제나 마르크스주의가 찬밥 신세였지만…역사학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
사회학에서 마르크스는 그 학문을 창시한 고전 이론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철학에서는 역사유물론이 사회철학으로서 강력한 토대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전전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는 그 존재 양태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홉스봄은)
볼셰비키 혁명이 조건의 성숙 없이 일어남으로써 종국에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계몽주의적 유산의 계승자로 보고 있다.
계몽주의는 이성,
진보, 인간 해방을 추구한 사상이었고 자유주의가 몰락하던 시절에 마르크스주의는 계몽주의를 대변함으로써 지식인들을 공산주의의 대의 속으로 끌어들였고,
피억압대중들을 지도할 수 있는 윤리적 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홉스봄은,
마르크스주의의 과제를 체제변동이 아니라 근대성이 이룩한 문명을 방어하고 사회체제가 해체되는 것을 막는 것에 두고 있다.
이 책에서 그람시는 평의회 마르크스주의자 볼셰비키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구성하는 이론가로서 인용된다.
그는 그람시의 실천철학을 소개하며 노동자들이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이 혁명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홉스봄은 그만큼 미래의 역사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오며:
비판적 평주
홉스봄은 어떤 점에서 전형적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당면과제는 서구 사회가 이룩한 자본주의적 진보를 방어하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직면한 위기에 걸맞게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한 기초적인 전망조차 제시하지 못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논하고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이를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침묵한다…
마르크스주의가 단지 계몽적 유산의 방어자로서만 의미 있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명의 가치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이다…
물론 이런 급진적 프로젝트의 재생을 작고한 노역사가에게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