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미학적 실존: 순간을 위한 즉흥성
삶의 방식에 대한 세 가지 단계 (발달)
혹은 양상 (고착):
미학적, 윤리적, 종교적 삶.
미학적 삶에서 윤리적 삶으로, 윤리적 삶에서 종교적 삶으로 발전하더라도 그 전의 삶들은 보존
즉흥성으로서의 미학적 삶:
순간을 위한 삶
미학적 삶의 공통적 요소
1 즉흥성 the immediate: 인간 실존의식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자연적이고 저절로 일어나는 감각.
키에르케고르에게 미학적 삶의 다양한 양상은 감각과 직접적으로 연결됨.
“미학적 삶을 사는 사람은 그 자신 자체가 즉흥적인 삶을 추구한다.”
쾌락주의와는 다른 개념.
키에르케고르는 쾌락에 초점을 두지 않고 욕구 그 자체에 초점
2 시간:
미학적 삶을 사는 사람은 “순간”
안에서 살고 순간을 위해서 산다.
즉흥적 요구는 순간적 성격을 지님.
다른 성별과의 관계:
미학적 삶은 성적 정사,
윤리적 삶은 일부일처제,
종교적 삶은 독신주의
즉흥적 미학적 삶과 성찰적 미학적 삶
범위:
“즉흥적 미학적 삶”으로부터 “성찰적 미학적 삶”에 이르기까지 연속체로 구성 (돈 주안과 파우스트)
이는 상대적 개념 (노동자와 바리스타에게 한 모금의 와인,
후자는 상상력이 욕구와 관계)
키에르케고르의 성찰적 미학은 고립되어 있는 개인을 의미,
이 개인은 다른 사람과의 실제적인 관계로부터 단절.
자기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정체성 형성,
그래서 성찰적 미학은 아직 개발되어야 하거나 “즉흥적인”
것 (헤겔의 영향).
미학적 삶의 성찰적 형식은 단순한 즉흥성 그 자체의 형식보다 더 호소력이 있고 더 성공적으로 될 가능성이 있음
모차르트,
돈 조반니,
그리고 즉흥적 미학
음악은 감각적인 것을 표현하는 완전한 매체,
음악이 “감각적임의 언어”이기 때문이고 돈 주안은 음악을 위한 완벽한 주제.
그가 감각적임의 이상을 구현했기 때문.
감각의 육화로서의 돈 주안의 매력은 원초적인 열정이 구현된 것.
그러나 돈 주안의 삶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움.
그로 인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이나 슬픔,
단조로움의 증가 등
농작물의 윤작:
A의 미학적 철학
이 글의 전제:
인간 삶의 가장 큰 악은 지루함이라는 것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
1 다양함을 계발하는 것 (윤작법).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면 결국 지루함으로 귀결될 것.
경작의 방법을 바꾸거나 곡물의 종류를 바꾸는 것.
2 인간의 상상력의 무한한 능력을 활용할 것.
물리적 경험보다 내면의 강렬한 삶을 추구할 것.
진정한 미학적 삶을 사는 사람은 그의 삶을 예술로 만든다.
미학적인 삶이 추구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자기 만족과 자기 절제.
임의성의 활용
마음을 유혹하기:
“유혹자의 일기”
강력한 유혹자:
돈 주안과 대비되는 성찰적인 유혹자.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흥미로운 것”을 추구.
“자기 자신을 제한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즐거움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유혹자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함
우울감과 고통을 포용하는 성찰적 미학적 삶
성찰적인 미학:
(미학적 삶의)
우울감melancholy
문제. 슬픔과 우울감에 대한 성찰적 미학적 삶의 열병을 이해하는 것이 이 삶을 이해하는 것에 중요한 단서.
1 자신의 삶을 일종의 비극으로 전환 2 고통은일종의 의미를 전달 하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 3 무의미성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로 비극적 영웅이 될 수 있음.
비참한 존재가 된다는 것의 매력은 우월감을 증명할 수 있는 일종의 방법
성찰적 미학의 어려움:
즉흥성의 상실과 윤리성의 침투
즉흥성의 상실
자기 자신을 미학적 즐거움의 대상으로 만들고자 할 때,
이것은 그의 즉흥성을 감소시키고 악화시킬 수밖에 없음.
또한, 즉흥적이든, 성찰적이든,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직면함.
성찰적인 미학적 삶은 대가가 즉흥성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필요로 함
윤리의 침투
윤리적 자각은 인간에게 근본적.
미학적 삶을 사는 사람은 윤리적 자극을 억누르려고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윤리적 자각은 존재함
5장 윤리적 실존:
자기됨의 추구
윤리적 삶은 인간 삶의 한 영역일 뿐 아니라 실존의 특별한 방식,
실존의 한 단계.
윤리적 삶에서 공통으로 취하는 형식은 정체성 추구.
미학적 삶은 일관성 결여하고 자기발전 저해.
윤리적 삶은 두 가지 의미에서 통합된 자기가 되는 것을 추구.
1 일관성과 통합성 2 지속성
윌리엄 판사의 결혼에 대한 변호
결혼은 윤리적 제도로써 헌신이 요구되는 것:
against 미학적 삶의 사람들 (결혼은 지루한 것,
의무로써의 결혼)과 유니테리안 교리 (결혼은 안정성과 행복을 위한 것,
우정으로써의 결혼)
<-> “결혼 그 자체 안에 목적이 있다.”
견디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
사랑을 완전하게 하고 사랑의 필요를 채워줌.
결혼은 첫사랑을 “더 높은 단계의 집중”으로 끌어올림
자기의 본성에 대한 윌리엄 판사의 견해
미학적 삶과 윤리적 삶:
선택을 통해서 자기를 발전시키는 수단:
“미학적이라는 것은 즉흥적으로 그 자신이 되는 것이고 윤리적이라는 것은 그 자신이 되어감을 의미한다.”
윌리엄이 제기하는 핵심은 악 대신에 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바로 그 선택이다.
자기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면,
특별한 형태의 발전을 요구한다는 확신 속에서 선택이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 가능성이 포함된 것.
인간은 도덕적 존재로 창조되었고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반드시 책임을 선택해야 하는 존재
미학의 형태:
윌리엄 판사의 절망에 대한 진단
미학적 삶 (건강,
아름다움, 돈과 재능 추구)은 생경함의 한 형태.
즐김이 중심에 있는 삶은 그의 정체성이 그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생경한 삶을 살게 됨.
미학적 삶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욕구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님 (네로는 즐거움과 새로움을 추구했으나 지루함과 우울함이 증가됨)
비극으로서의 미학적 삶을 경험하고 뒤로 물러서서 성찰하는 것을 배운 사람은 안전한 정체성을얻게 되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정체성을 통제하지는 못함.
너 자신을 선택하라:
판사의 처방
A는 절망에 처해있고 그 치유책은 A로 하여금 절망하기를 요구한다.
절망은 그 자신을 발견하는 것.
절망을 선택하면서 A는 그 자신을 즉흥성으로부터 과제로 변환시킴 왜냐하면 내가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내가 앞으로 되어가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기 때문.
절망은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A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어떤 것인데 여기서부터 A의 변화가 시작됨.
그러나 “윤리적인 삶 안에서도 절망이 내재되어 있는데 그 절망을 견디어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획득할 수 있다.”
이 때 신적인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윤리적 삶:
두려움과 떨림
창세기 22장 아브라함과 이삭:
윤리적 언어로서의 믿음은 이해하기 어려움.
통속적 해석은 “아브라함이 최선의 것을 자발적으로 희생하려고 한 것만큼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
그러나 아브라함이 처한 진정한 어려움은 뭔가 중요한 것을 포기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그에게 요구된 것이 그의 윤리적 의무와는 반대가 된다는 것.
그 의무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윤리적 의무
칸트의 윤리적 특징은 원칙의 보편화 (보편적 도덕법칙).
헤겔은 칸트의 윤리가 지나치게 형식적이며 특정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없음을 비판.
헤겔에게 있어서는 사회적 도덕 Sittlichkeit이 칸트의 개인적 도덕성을 능가.
아가멤논,
예후, 브루투스 모두 자식을 희생 제물로 바쳤으나 이는 윤리적으로 변호 가능.
아버지의 의무보다 국가에 대한 의무가 더욱 중요.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국가가 없었고 가족이 가장 높은 차원의 사회적 제도.
보다 높은 윤리적 의무는 존재하지 않았음.
만약 “윤리의 목적론적 정지”
a teleological suspension of the ethical)가 없다면 아브라함은 비도덕적인 사람이며 살인자.
신을 향한 절대적인 의무가 없다면 아브라함의 행동은 정당화 불가능.
우리가 아브라함을 존경한다는 것은 윤리보다 더 높은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암시.
또한 아브라함이 그의 행동을 그의 아내나 이삭과 상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윤리보다 더 높은 어떤 것이 있다면 정당화 가능
윤리적 삶의 한계:
“번민에 가득 찬 사람을 구원하는 선구자”로서의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행동이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는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길을 통해서 그 일을 행함으로 아브라함은 또 다른 자기 자신이 됨.
이것은 당시의 윤리적 범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
[불안의 개념]은 죄의 실재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음.
규범화가 불가능하기 때문.
그 대신 죄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
그것은 불안의 심리적 상태와 관련된 것.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은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생리적 욕구가 억압되어 나타난 증상이 아니라 인간 조건의 근본적인 부분.
[두려움과 떨림]과 [불안의 개념]은 사회적 도덕의 한계를 제시.
그러므로 다음 장은 종교적 삶에 대해 논의